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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잘못된 관행, 피의사실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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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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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은폐 혐의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자살한데 이어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부장검사까지 투신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직무를 행함에 있어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피의사실을 구체적으로 공표하는 잘못된 관행이 있었고, 이로 인해 피의자가 심리적 압박이나 굴욕감으로 자살하는 일이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범죄사건의 보도는 범죄 행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사회적 규범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법적 제재가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가를 알리는 기능이 있다. 나아가 범죄를 사회문화적으로 분석 평가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긍정적 여론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언론보도는 어느 정도의 공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를 보도하기 위하여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범죄 혐의사실의 사소한 내용까지 흥미 위주로 모두 자세히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란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돼 있는 사람으로서, 검찰이 공소제기를 해야 '피고인'이 된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수사단계에서 피의자가 구속되면 유죄를 선고받은 죄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 기소하면 유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9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에 대하여 무죄추정 원칙을 규정하고 있으며, 수사 중에는 이러한 원칙에 따라 최대한 피의사실의 공표가 자제돼야 한다. 검찰은 과학적 수사를 통해 혐의사실을 증명하는데 주력해야 하며, 망신주기, 모욕주기 식의 수사나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예의를 갖추고 불필요한 모욕감이나 굴욕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피의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가 이뤄져야 하며, 실적이나 성과만을 우선시하여 거칠게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점, 형사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 및 직접 수사를 담당한 수사기관이나 수사담당 공무원의 발표에 대하여는 국민들이 그 공표된 사실이 진실할 것으로 강하게 신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에는 공표하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표하는 피의사실의 양도 최소한이어야 한다.
불구속 수사는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으로서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구속하도록 하고 있다. 구속이 되었다고 해서 유죄로 단정하면 안 되고, 불구속이라 해서 무죄로 볼 수 없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하여 법관의 신상을 털고 비난을 퍼붓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구속을 마치 형벌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며,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검찰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반대의견을 내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검찰이 좀 더 증거를 보강해 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것은 자유이나, 영장 발부에 관한 법원 결정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수사관행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이 천명한 무죄추정 원칙과 수사기관에 부여된 비밀준수 및 인권존중 의무를 실현하기 위한 형법상 안전판이며, 법원도 피의사실 공표의 허용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보고 있다. 공권력에 의한 수사결과 공표는 그 내용의 진실성에 강한 신뢰가 갈 뿐 아니라, 나중에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피의자는 물론 가족과 주변인이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어렵다. 다시는 수사단계의 피의자가 피의사실 공표나 강압수사로 인해 자살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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