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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37년]① '독립영웅' 무가베는 어떻게 독재자가 됐나…김일성 찬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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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독재’ 무가베, 집권부터 몰락까지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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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짐바브웨를 37년 동안 독재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집권당이 제시한 최후통첩 기한 내 공식적인 사퇴 입장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탄핵당할 위기에 놓였다. 현지시간으로 21일 탄핵절차를 밟고 22일 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무가베는 ‘독립운동가’라는 영웅 타이틀로 짐바브웨를 37년째 통치하고 있는 독재자다. 그는 부인 그레이스를 후임으로 앉히기 위해 지난 6일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경질했다. 음난가그와는 무가베의 독립운동 동지로 군과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고 군부를 이끄는 콘스탄틴 치웬가 장군이 14일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켰다. 20일 정오까지 최후통첩 시한을 제시했지만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시한이 만료됐다.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짐바브웨 집권당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은 20일 오후 비상 회의를 열고 탄핵 절차에 관해 논의했다. "무가베는 불안정의 근원이자 법치주의를 존경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는 게 탄핵 사유다. 주요 야당인 민주변화동맹(MDC)도 대통령의 탄핵 추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37년의 기나긴 독재가 드디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무가베 독재의 시작은 1980년, 짐바브웨가 건국되면서 초대 총리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당시 무가베는 짐바브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로 크게 존경받던 인물이었다. 정권 초기에는 백인 정권에 함께 투쟁한 조슈아 은코모가 이끄는 애국전선과 연정을 구성했고 백인들의 정치참여도 보장하며 유화적인 정책을 취했다.
하지만 1982년 은코모를 연정에서 측츨하고 짐바브웨 2대 부족인 은데벨레족의 거주지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약 2만 명을 학살하는 등 독재자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애국전선을 통합해 현재의 집권당인 ZANU-PF으로 개편하고 다른 당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며 1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통치 방식도 중국 마오쩌둥의 계획경제체제를 받아들이고 북한 김일성의 ‘유일 독재’와 ‘우상화 정책’을 찬양했다. 김일성에 대해서는 대단한 애착을 보였는데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부통령을 위원장에 임명해 추모위원회를 만들고 매 년 김일성이 사망한 달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무가베는 대통령 선거에서 80~90% 가량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국제 여론이 악화되면서 2000년 총선부터 야당의 참여를 허용했다. 200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건 창기라이와 대립이 시작됐다.

2000년대에는 생활필수품 부족으로 중앙은행에 수입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무분별하게 찍어냈다. 이는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왔고 각국의 경제 제재와 식량난으로 아프리카 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화폐개혁을 실행했지만 경제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그 와중에 영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의 호화 생활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무가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하락으로 2008년 총선에서는 창기라이가 이끄는 민주변화운동이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대선에서도 창기라이가 47.9%의 득표율로 43.2%를 얻은 무가베를 꺾었다. 2차 선거를 앞두고 무가베 측은 창기라이의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했고 창기라이는 선거 무효를 주장했지만 무가베는 선거를 강행, 창기라이가 불참한 가운데 85.5%의 득표율로 또 한 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국제 사회에서는 당시 선거 결과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이런 탓에 무가베는 창기라이와 협상해 헌법을 개정, 총리직을 부활시키고 창기라이를 총리로 임명했다. 그럼에도 2014년 극심한 경제난과 가뭄으로 대규모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수도 하라레에서 20만 여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무가베는 시위대에 ‘평화’라는 이름으로 최루탄과 물대포로 무력 진압했고 잠바브웨 인권위원회 등 국내외에서 큰 비난을 샀다.

한편 현재 짐바브웨 의원들은 이번 무가베 탄핵의 사유로 무가베 가족의 재산 축적, 측근 부패와 권력 남용, 경제 파탄 등으로 논의 중이다. 짐바브웨 의회에서 무가베 탄핵에 대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무가베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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