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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②외환위기 당시 IMF는 왜 '조선총독부'라고 불렸을까?

최종수정 2017.11.21 11:50 기사입력 2017.11.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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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로고(사진=위키피디아)

국제통화기금(IMF) 로고(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외환위기에 대한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좋지 않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1997년 11월21일을 '제2의 경술국치'라고 칭하거나 IMF를 조선총독부, 감독관은 조선총독이라고 비유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IMF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에 놓였던 대부분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당시 IMF가 210억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하는 대신 요구한 조건은 크게 3가지로, 고금리정책과 강도높은 구조조정, 공공부문에 대한 영리화 등이었다. 특히 자본유출을 막아야한다는 명목하에 강행된 고금리 정책은 국내 기업과 가계에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었다. 시중은행 금리가 연 29.5%까지 올라가면서 가뜩이나 자기자본대비 5배 이상의 부채에 시달리던 대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게 됐다. 여기에 따른 연쇄부도가 금융권으로 번지면서 대량의 실업과 경기후퇴를 유발했다.

결국 1998년, 심각한 스태그플래이션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6.9%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2.6%에서 7.0%로 급등했으며 물가상승률도 4.4%에서 7.5%로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재정정책까지 펴라는 IMF의 요청에 따라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공공부문에서 전체 인력의 약 20% 정도가 감원됐다. 이후 시작된 아웃소싱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IMF에 대한 기억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는 셈이다.

IMF의 이러한 강도높은 구조개혁 요구는 주로 1980년대 중남미 국가들의 외환위기 때 사용한 극약처방법과 비슷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의 재정적자와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처방을 아시아 국가들에도 적용한 것. 하지만 당시 한국 같은 경우에는 균형 예산을 유지하고 있었고, 단기 유동성 악화와 기업부실이 문제라고 해도 중남미 국가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견실한 국가였다.

IMF의 요구가 지나쳤다는 주장은 당시 학계에서도 많이 나왔었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MIT 교수,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교수 등 주요 경제 석학들이 IMF의 정책에 반대했다. 극단적인 고금리 정책과 재정긴축 조치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특히 한국은 기업의 부채 상환부담을 가중시켜 연쇄부도를 발생시키고 대량의 실업과 경기후퇴를 유발할 것이라 지적했다. 학계에 이어 당시 세계은행(IBRD) 부총재였던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도 IMF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결국 IMF의 요구대로 동아시아 각국의 구조개혁이 이뤄졌고, 이것은 아시아 각국에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았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유지해야 경제주권을 지킨다는 논리는 매우 강화됐다. 올해 우리나라의 9월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3848억달러다. 중국은 3조915억달러, 태국 1557억달러, 인도네시아도 1130억달러에 달한다. 외환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심화되면서 달러 뿐만 아니라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 또한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이 트라우마는 다시 아시아 국가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미국과 유럽으로 돌아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핵심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이를 통해 미국에 유입됐던 막대한 자금 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동아시아의 복수'란 표현이 나오기도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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