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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중얼거리는 생각/김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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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나는
 청유형 물방울로 똑똑 떨어뜨렸다
 놀이기구처럼 싱싱
 떨어져 다음 다음 다음 월요일에 닿았다

 어느 날
 녹이 슬은 수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물 좀 주세요 생각 몇 방울만 주세요
 그녀 발밑에는
 온몸으로 뿌리친 생각들이
 떡잎도 뿌리내리지 못한 생각들이
 쇳가루로 흩날리고 있었다

 봄이 가장 길어질 때
 호기심은 공처럼 아무 데나 굴러
 내 생각 없이 골목을 데리고 떠났다

 여름이 가장 길어질 때
 베란다 식물처럼 한쪽으로 머리를 두는 굴성으로
 내 옆구리가 닳아져 버렸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다는 것을 아는 동안
 한쪽으로 기운 굴성을 펴느라
 그녀는 봄여름가을겨울 생각을 모두 써 버렸다

 용량 부족이라는 지시어처럼 길게
 청유형 생각의 공터에 비가 쏟아졌다
 흥건하게

 물덤벙 끼어든 화요일

 소녀야 울어도 된다

 누구라도 생각은
 모자랄 수 있어 고장 날 수 있어

 
그림=이영우 화백

그림=이영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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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왜 낙엽을 만드는 걸까? 지구가 자전을 멈추면 어지러울까? 그런데 윗집에서 혹시 코끼리를 키우는 건 아닐까?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엔 무얼 하지? 달의 뒷면엔 정말 외계 로봇 군단이 있을까? 청약 통장을 깨야 하나? 엄마 무릎은 좀 나아졌을라나? 저녁때 무얼 먹지? 그나저나 트럼프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귀신이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도 귀신이 될 텐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그때 그 사람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 바람이 시작된 곳은 어딜까? 십 년 후엔 어디서 살고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까 시간 참 잘 간다. 그런데 시간은 뭐지?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해도 나이 드는 건 매한가지 아닐까? 내가 나이기 전의 나를 만나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데 나는 난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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