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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구통제수단이 아니다"…낙태죄 폐지 목소리 봇물

최종수정 2017.11.09 16:58 기사입력 2017.11.0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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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9일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
공동행동 "낙태죄 폐지는 '생명권 대 선택권'의 문제 아니다."
"국가는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 도구로 삼아온 역사를 마감해야"
경구용 자연유산유도약 '미프진(MIFEGYNE)' 합법화 요구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정준영 기자)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정준영 기자)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1
두 딸의 엄마인 40대 여성 A씨에게는 네 번의 임신중절수술 경험이 있다. A씨는 첫째 딸 출산 직후 직장생활을 이유로 세 번의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이후 둘째 딸을 낳고 또다시 임신하자 네 번째 낙태를 결정했다. A씨는 질외사정으로만 피임하는 남편과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하다며 계속 아이 갖기를 요구하는 시부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성으로서 자궁을 가졌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2
B씨는 낙태 방법을 고민하던 중 불법으로 유통되는 임신중단 약물을 구매했다.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법적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B씨는 포장도 없이 봉지에 담긴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고 복용했다. 이후 출혈이 동반되는 극심한 고통이 이어졌다. 결국 B씨는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유산된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B씨는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그 누구도 누군가의 생명이나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며 "국가는 낙태죄 폐지로써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의 도구로 삼아온 역사를 마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소속 참가자 60여명은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낙태죄를 폐지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죄'다. 낙태를 한 여성은 형법 제269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의료인은 같은 법 제27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한편 우생학(優生學)·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에 의한 임신,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해 낙태가 가능하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현재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돼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며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현재 헌재는 낙태죄에 대한 또 다른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다.

공동행동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은 대립하는 권리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임신 지속 여부에 대한 여성의 판단은 태아가 살아갈 삶의 조건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며 "삶의 조건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낙태죄가 폐지되면 오히려 임신중단율이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림 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원은 "낙태죄 처벌은 위험한 시술을 부추길 뿐 임신중절수술을 근절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이한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은 "낙태죄 폐지로 의사들이 수술에 대해 합법적으로 상담할 수 있게 되면 오히려 임신중단율이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행동은 "여성의 몸을 불법화하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조항을 전면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부위원장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과 예외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모두 일본의 형법과 모체보건법을 베낀 것"이라며 "낙태죄야 말로 일제의 청산이 안 이뤄진 적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경구용 자연유산유도약 '미프진(MIFEGYNE)'의 합법화 요구도 이어졌다. 공동행동은 "의료진 교육과 미프진 사용 보장을 통해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임신을 중단할 수 있도록 최선의 의료적 선택지와 의료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198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된 미프진은 착상된 수정란을 자궁과 분리시키는 '미페프리스톤'을 성분으로 하는 약품이다. 자궁을 수축해 분리된 수정란을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미소프로스톨'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미프진의 유통 및 도입을 불허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낙태죄를 폐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모두의 삶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결정으로 국가가 개인을 인구관리와 성적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역사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요구' 글에는 무려 23만5372명이 청원했다. 청와대가 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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