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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수서, 갖은 악몽꾸다 서서히 기지개 켜는 '궁마을'

최종수정 2017.11.04 10:51 기사입력 2017.11.04 10:30

두 남자의 도시이야기 강남구 수서동
90년대 한보비리로 개발 지연
최근 호재 겹치며 주목 받아


2015년 수서역 남쪽에서 수서역 방향으로 촬영한 모습.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수서라는 지명은 한강 지류의 하나인 탄천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었다. 삼천갑자 동방삭이 숯을 빨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탄천은 과거 검내라 불렸고 실제 성남쪽 일대에는 숯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현 수서동 일대는 조선시대나 이후 일제 때 수서리로 불렸고 광복 후 몇 차례 관할구역이 바뀐 끝에 90년대 들어 일원동에서 떨어져 나와 정식 행정동 자격을 갖게 됐다. 조선 태조의 일곱번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 내외와 그들을 기리기 위한 봉사손 광평대군, 그리고 그 자손들의 묘소는 여전히 수서동 일대 상당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과거 궁촌 또는 궁말ㆍ궁마을이라 불렸고 이 지명은 여전히 일부 남아있다.

'땅의 해결사' '로비의 귀재'로 불리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건 1991년 불거진 수서사건 때였다. 수서동 일대 택지개발지구 공급을 앞두고 당초 계획과 달리 우여곡절 끝에 특별분양이 성사됐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치권 등 권력이 개입했다는 게 신문기사로 알려졌다.

당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한 권력의 배후에 있던 인물이 정 전 회장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대통령이 초청한 만찬에 하키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정부의 주택 200만가구 건설정책에 호응해 집 없는 사람을 위한 아파트를 짓고 싶다. 정부에서 택지를 분양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한 일화는 유명하다.
훗날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1997년 한보철강사태로도 매스컴의 중심에 선 정 전 회장의 인물됨은 1980년대 후반부터 수서 일대를 무대 삼아 공들인 데서 이미 예견돼 있었다. 수서 일대가 강남구 한 켠에 있어 일찌감치 개발여건을 갖췄지만 상대적으로 주변 지역보다 늦게 개발에 시동이 걸린 건 정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수서사건 영향이 크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기관을 필두로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관가, 언론계까지 수서 일대를 배경으로 얽히고설킨 비리가 대대적으로 불거지면서 개발시기를 놓친 셈이다. 여전히 수서 일대에는 녹지나 옛 모습의 흔적이 많아 서울 강남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주변에 생긴 다양한 택지지구로 인구가 급증한 데다 인근 신도시 조성ㆍ고속철도 개통 등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수서 일대는 뒤늦게 개발에 탄력을 받고 있다. 탄천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닿는 삼성동 일대가 향후 서울은 물론 강남을 대표하는 국제업무지구로 개발을 앞둔 까닭에 수혜지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수서역 남쪽 편으로 있던 개발제한구역은 올해 초 공공택지지구로 지정, 인근 역사(驛舍)와 연계한 개발이 추진될 예정이다. 지금껏 비리사건과 불균형 개발로 얼룩진 수서 일대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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