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엇갈렸다. 공원에서 만난 한 산책객은 "자꾸 누가 물려 죽었다느니 하는 사건이 발생해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며 "목줄도 있고 덩치가 작아 안고 다니면 되는 데 주변의 시선이 너무 싸늘하다"고 말했다. 반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인근 주민 A씨는 "우리 개는 안 그런다느니 하면서 공원에 대형견을 풀어 놓아 아이들과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사람들이나 곳곳에 똥 오줌을 깔아 놓던 개들이 안 보여서 오랜만에 편안하게 산책을 할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 유기견 '퍼스트독' 시대에도…연 10만 마리 이상 버려져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하찮게 여기냐. 아무리 동물이라도 식구로 받아 들이려면 정말 큰 결심과 준비를 해야 한다". 최근 홀로 크고 있는 외동 아들이 외로워 보여 반려견 입양을 제안한 40대 김모씨가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아들에게서 들은 기특한 충고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외로울 때나 자식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을 준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다가도 큰 병이 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경우, 장기간 휴가 등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서슴없이 반려동물을 버리는 이들이 많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기견 토리를 입양해 최초의 유기견 출신 퍼스트독이 등장하는 등 버려지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소용도 없다. 유기된 동물 수는 21014년 8만1000여마리, 2015년 8만2000여 마리, 지난해 8만9000여 마리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 유기동물들을 원주인ㆍ새주인에게 보내거나 안락사ㆍ자연사 처리하는 비용도 지난해 114억8000만원이 드는 등 갈수록 늘고 있다. 버려진 개들은 들개 떼가 돼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다. 서울 시내에만 170여마리가 몰려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들도 '캣맘' 갈등의 주 원인이다. 도둑고양이화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이를 불쌍히 여긴 '캣맘'과 비캣맘 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 돈벌이가 된 동물 사랑, 우후죽순 동물카페…"외국선 동물 학대, 상상도 못할 일"
최근 방송된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한국을 처음 찾은 한 독일인ㆍ러시아인이 고양이ㆍ라쿤 카페를 찾았다. 이를 지켜보던 패널이 한 말이 걸작이었다. "이런 일은 독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예요. (카페 같은 곳에서 이런 일을 하면) 당장 동물보호단체들이 달려 올 겁니다."
한국의 왜곡된 상업적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일침이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고양이ㆍ라쿤 등 특정 동물 카페, 어린이들을 상대로 다양한 동물들을 '체험'할 수 있다며 돈벌이를 하고 있는 각종 동물체험시설들은 패널의 말처럼 동물권을 중시하는 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미국산 너구리인 '라쿤'의 경우 귀여운 생김새로 최근 270여마리가 전국에서 30여곳의 카페가 운영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일본도 1970년대 애완용으로 수입하다가 생태계 교란ㆍ농작물 피해 등이 발생해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라쿤은 광견병ㆍ북미너구리회충 등 감염병을 전염시킬 수도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하지만 라쿤ㆍ고양이 등 동물 카페는 관련 법상 관리 대상인 동물원 또는 일정 규모 이상 시설이 아니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태다.
동물체험시설도 전국에서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다"는 등 먹이 주기 체험ㆍ만지기·함께 놀기 등을 권하며 전국에서 최소 40여개 이상 성업 중이다. 이곳에 갇힌 동물들은 거친 아이들의 손길에 이러 저리 휘둘려 스트레스를 받다 사망하기 일쑤다. 시설ㆍ인력ㆍ위생ㆍ먹이 등 제대로 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 "개님이 사람보다 먼저?"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지나친 나머지 이웃은 물론 식구들에 대한 배려도 포기한 이들이 많다. 추석인 지난 4일 반려견을 혼냈다는 이유로 남편을 살해한 40대 주부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경기도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그녀는 "반려견이 짖자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견인들이 "우리 애는 안 그런다"며 목줄ㆍ입마개 등을 채우지 않은 채 산책을 하는 행위도 '사람보다 개님이 앞선' 대표적 행위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어린아이들은 심각한 공포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들은 "얘가 얼마나 착한데"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들은 아무리 착하고 작은 견종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언제든지 공격적으로 돌변해 다른 사람들을 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집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식구라도 어린아이ㆍ노인 등 서열이 낮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경기도 부천 주민 B씨는 "예전에는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지 않는다는 합의가 암묵적으로 있었는데, 요즘에는 게의치않고 진돗개같은 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며 "어린 딸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개가 짓고 으르렁댈 때는 정말 가만 놔두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개님이 먼저'인 왜곡된 애견 문화는 갈수록 피해를 키우고 있다. 개 물림 사고는 2014년 1889건에서 지난해 2111건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주인들의 무신경은 여전하다. 서울 시내 한강 공원에서 목줄을 하지 않았다가 계도된 건수는 2013년 2만8429건에서 2014년 3만2260건, 2015년 3만9983건, 지난해 3만8309건, 올해 1∼9월 2만8484건에 달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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