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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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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학자들은 삐딱하기 마련이다. 4차산업혁명에 대한 문재인 정부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다. 동석했던 교수 몇명이 까칠했다. "혁명, 혁명하면서 우리가 좀 호들갑을 떨지." "4차산업혁명의 지향점이 유토피아 맞아?"

그 며칠 전 문 대통령은 4차산업혁명위원회출범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4차산업혁명이 우리의 미래"라고 역설했다. 교수들은 지난 대선에서 모두 '문재인'을 찍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발언이 마뜩잖았나보다. 누군가 툭 내뱉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말이다. 15세기 들어 영국은 방직산업이 급성장했다. 땅을 가지고 있던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쫓아내고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졸지에 터전을 잃은 서민들은 영국의 뒷골목으로 내몰렸다. 바로 인클로저(Encloser) 운동이다. '울타리를 둘러치다'는 뜻의 인클로저는 실은 기술과 자본의 잔인함을 드러낸다. 양 때문에 지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서민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토머스 모어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로 비정한 사회를 풍자했던 것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도 흥미롭다.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실수는 농경이다."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 사회가 농경 사회로 '진보했다'는 일반적인 시각에 대해 그는 반기를 들었다.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바람에 영양 상태는 오히려 나빠졌다. "수렵-채집인들의 평균 신장은 남자는 173cm, 여자는 163cm였지만 농업을 시작하면서 (기원전 3000 B.C) 남자는 158cm, 여자는 150cm로 줄어들었다." 불평등도 생겼다. "농업의 도래와 더불어 엘리트들은 더 잘 살게 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욱 궁핍해졌다."

토머스 모어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시각은 이 지점에서 겹친다. '문명의 발전'이 항상 '정의의 편'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 4차산업혁명을 바라보는 까칠한 시선은 그 때문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자율주행차라는 화려한 용어를 걷어내면 '인류가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다보스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4차산업혁명의 영향으로 716만5000명이 일자리를 잃고 202만1000명이 새 일자리를 찾는다. 소수의 혜택이 감당하지 못하는 다수의 상실. 4차산업혁명을 논할 때는 '기회'에 가려진 '위기'까지 숙고해야 한다는 것, 적어도 '사람'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 그날 그 자리에서 까칠했던 학자들의 속내였던 것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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