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충돌 우려, 당시 우호국 미국에 매각
알래스카 매각 후 한반도 문제 본격 개입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150년 전인 1867년 10월18일은 당시 러시아제국이 미국에 알래스카를 당시 미화 720만 달러에 매각한 날이다. 1㎢ 당 5달러의 헐값에 팔린 알래스카에서는 이후 금과 석유, 막대한 양의 석탄이 나왔고 냉전시기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새로서 군사적 가치도 부각됐다. 이에따라 알래스카 매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토 매입 사례로 기록돼있을 정도다.
이 지역은 원래 북미 에스키모인들의 일파 중 하나로 알려진 알류트족(Aleut)이 살던 곳으로 알래스카란 명칭 자체도 알류트족 말에서 온 것으로 '바다의 움직임이 향하고 있는 땅'이란 의미였다고 한다. 알류트족의 본거지인 알류산 열도에서 해류 흐름에 따라 도달하는 땅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 평화롭게 살던 알류트족들은 17세기 중엽, 시베리아 동쪽 끝까지 탐험 온 러시아 탐사대가 베링해를 넘어 이 지역으로 건너오면서 러시아인들과 조우한다.
초창기 러시아인들은 알래스카의 모피를 얻기 위해 쳐들어왔다. 이들은 알류트족 영역을 침략해 이들을 노예로 삼고 식민지화를 진행했으며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한때 알류트족의 80% 가량이 사망하는 재앙이 발생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알래스카의 부존자원이 상당함을 조사를 통해 알게됐지만 1853년 발생한 크리미아 전쟁으로 인해 재정난에 부딪히면서 매각계획을 세우게 됐다.
또한 알래스카를 매각하면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문제에 더 깊숙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획득한 러시아는 한반도의 부동항을 이용해 중국 해안지대 일대로 뻗어나갈 전략을 구상 중이었다. 당시 2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완전한 시장개방이 이뤄지자 전 세계 기업들의 관심은 인구 4억의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일이었다. 각각 홍콩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세력확대에 나선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 남부 일대로 세력권을 확장해나가자 각 열강들은 중국 나눠먹기에 뛰어들었고, 러시아는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 진출을 도모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는 러시아와 대결 중이던 영국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한반도와 일본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1866년 조선왕조는 프랑스와 병인양요로 강화도와 한강 일대에서 전투를 벌였고, 평양에서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와의 교전이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웅번 세력과 막부세력이 내전을 시작했다. 러시아는 원산만 일대에 군함을 파견했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일본은 1867년 내전이 종식되자 러시아의 무주지선점을 우려해 곧바로 홋카이도 개척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이후 영국의 동아시아 지역파트너로 선정된 일본과 1905년 러일전쟁을 벌일 때까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러시아는 만주와 한반도 진출을 위한 전략을 펴나갔으며 이러한 전략의 기반이 된 것은 알래스카를 팔아치워 얻은 긴급자금이었다. 알래스카 매각이 19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운명도 뒤바꾼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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