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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축구는 축구니까 축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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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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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문학동네, 2015)'을 읽었다. 작가는 달리기를 무척 사랑한다고 알려졌다. 평소 소설 속에 펼쳐지는 스포츠 서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혹시 소설에 달리기 이야기라도 나올까 싶어 눈을 부릅뜨고 읽었다. 달리는 작가가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쓴다면 몸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 소설은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파도, 바다가 제목에 나온다고 수영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가 예전에 다른 글에서 밝힌 것같이 이 소설은 '평생 어둡고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 버둥대는 이야기(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144쪽)'다.

이 소설의 첫 장 제목은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 자신의 이름이 왜 동백꽃을 의미하냐는 딸 카밀라냐의 물음에 양아버지는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16쪽)'라고 툭 던진다.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카밀라는 어이없게도 수긍한다. 이렇듯 이해 불가한 수긍을 이끌어내는 진술, 그러니까 '축구는 축구니까 축구지'라는 말도 어쩌면 축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긍하게 만드는 어설픈(그러나 그럭저럭 모순된 세상을 견딜만하게 만드는) 진술방식일지도 모른다.

2017년 10월 대한민국 축구팬들에게 한국축구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모순투성이다. 끝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 때 갓틀리케라고 불리던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후 대표팀을 맡게 된 신태용 감독. 무기력한 무승부 경기 두 번으로 본선진출권을 따낸 후 최근 벌어진 유럽 원정평가전에서 러시아, 모로코에게 각각 2-4, 1-3으로 참패했다. 경기 초반 어이없이 실점을 내준 대표팀은(그 날 실험적으로 구사했다는 변형된 쓰리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술이다) 죽기 살기로 임하겠다는 신태용 감독의 호언과는 달리 경기 내내 허둥거렸다. 믿기지 않는 대표팀의 전력을 어떻게 수긍해야 할까? 이제 막 네 번의 경기를 마친 신태용호는 이번 달 피파랭킹에서 사상최초로 중국에게 추월당했다. 지난달에 비해 5계단 오른 중국은 57위, 11계단 떨어진 한국은 62위다. 이로써 한국은 내년에 있을 러시아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에 편성될 확률이 한층 높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의 영웅 히딩크 감독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졌다. 애초 축구협회 부회장의 신경질적 반응이 화근이었다.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물증이 나오자 말을 바꿨다.

마지막 결정타는 축구협회 전, 현직임원 12명이 불구속 입건된 사건. 무려 220차례에 걸쳐 공금을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법인카드를 썼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축구협회의 반응이다. 지금까지 홈페이지에 사과문(이라고 쓰고 변명이라고 읽는다) 한 장 올려놓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축구해설가 한준희는 이 정도 사안이 터지면 축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적어도 당대표가 물러나거나(정당의 경우), 최고경영자가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하고(일반 사기업의 경우) 비상대책위라도 구성해 환골탈태를 하는 게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협회는(아직까지!) 어떠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체육계 비리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버티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월드컵을 둘러싼 전지구적 광란의 시간은 다가오고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오른 대한민국 축구경기를 우리는 고구마 백 개쯤 먹은 느낌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강호 네덜란드, 칠레도 본선티켓을 놓쳤고, 미국도 1986년 이후 처음으로 본선행에 실패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본선에 오른 32개의 나라 중 가장 약체로 평가받는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다가 욕하다가를 반복할 것이다. 왜? 축구는 축구니까 축구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축구)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니까.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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