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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경제제재가 낳은 대체식품, '사탕무' 설탕

최종수정 2017.11.22 09:05 기사입력 2017.10.13 15:30

사탕수수와 함께 설탕의 주 원료로 쓰이는 사탕무의 모습. 뿌리부분을 정제하며 나머지 부분은 가축 사료 등으로 주로 쓰인다.(사진=농촌진흥청)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사탕수수와 함께 설탕을 만드는 대체 작물로 알려져있는 '사탕무(sugar beet)'는 지구 온난화로 최근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겨울 재배에 성공하면서 점차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세계 전체 설탕 생산량의 20% 정도가 사탕무를 통해 나온다. 특히 사탕무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사탕무 시럽이 유명하며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보다 몸에 좋다고 알려져있다.

사실 사탕무 설탕 제조술은 18세기 중엽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인 마르그라프(Marggraf)에 의해 개발됐지만 정작 개발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사탕무로 정제된 설탕이 시장에 놓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탕무 설탕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집권했던 19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오늘날에는 품종 개량을 통해 러시아는 물론 몽골,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만주 등지에서 까지 기른다.

사탕무 설탕 정제술을 개발한 독일 화학자 마르그라프 초상화(사진=위키피디아)

뜨거운 열대의 태양과 비옥한 토질,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사탕수수와 달리 건조한 냉대, 온대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사탕무는 원래 가축사료로 많이 쓰였다. 마르그라프가 설탕제조술을 개발한 이후에도 정제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당시에는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이 우후죽순으로 전개됨에 따라 중남미 전역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건설됐고 설탕가격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면받던 사탕무가 유럽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나폴레옹이 1806년 10월 반포한 대륙봉쇄령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본토 침공을 계획하다가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이 참패하면서 영국과 직접 대결이 어려워진 나폴레옹은 영국에 대대적인 경제제재를 가하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이는 영국의 항구를 이용하거나 영국에 관세를 내는 중립국 상선은 모두 영국 상선으로 간주해 포획하거나 공격할 것이라는 정책이었다.

대륙봉쇄령 시행지역. 포르투갈을 제외하고 유럽 대부분 나라가 강제로 동참해야했다.(사진=astro.temple.edu)

이 경제제재 방식은 영국에 상당한 타격을 안겼지만, 역으로 유럽 대륙의 국가들도 상당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영국이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에 대응해 자국 해군력을 동원, 프랑스와의 연합국 해안을 역봉쇄하는 '긴급명령 1807년'을 발표하자 아메리카 식민지를 통해 유입되던 설탕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것. 영국은 카리브해와 프랑스 본국과의 항해로를 봉쇄했고, 이미 남은 해군 전력이 영국의 절반 수준도 안되던 프랑스는 이를 제거할 능력이 없었다. 실상 대륙봉쇄령을 내린건 나폴레옹이었지만 봉쇄당한건 프랑스였던 셈이다.
이렇게 되자 이미 생필품 반열에 올라있던 설탕은 품귀현상을 빚게 됐고 이에따라 일종의 자력갱생의 대안으로 끄집어 올려진 것이 마르그라프의 사탕무 설탕 제조술이었다. 나폴레옹은 사탕무 설탕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 "영국과의 무역은 완전히 종식되어야 하고 영국은 그 많은 설탕을 템즈 강에 던져 넣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한다"며 대륙봉쇄령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대륙봉쇄령에 대한 풍자화(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대영수출이 경제의 목줄이나 다름없었던 일부 국가들은 대륙봉쇄령에 반기를 들었다. 대표적인 국가가 포르투갈, 러시아 등이었다. 나폴레옹은 이들 국가에 대해 군사적 응징에 나섰고 이 동서 원정에 모두 실패하면서 그의 몰락도 시작된다. 프랑스군 30만명이 투입돼 대 실패로 끝난 이베리아 반도전쟁에 이어 70만 대군이 얼어죽은 러시아원정에서 치명타를 입은 나폴레옹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결과는 안좋았지만 사탕무 정제기술에 생명을 부여했던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인해 유럽 뿐만 아니라 중남미 나라들의 운명 또한 뒤바뀐다. 오늘날 세계 제일의 커피 생산지로 알려진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의 커피 명성 또한 대륙봉쇄령을 통해 시작됐다. 그전까지 대부분 사탕수수를 유럽에 수출하던 중남미 국가들은 사탕무가 유럽에 정착하면서 사탕수수 수출이 줄자 또다른 기호식품인 커피 플랜테이션으로 대거 돌아서버린 것. 최고급 콜럼비아 수프리모 원두의 이면에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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