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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남산 딸깍발이] 학대·결핍…그 속에서 악마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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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범죄학 박사,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출간
-세계 악명 높은 53인의 연쇄살인범 범행동기 '프로파일링'
-매력적인 외모의 남성과 돼지농장주의 비밀…가학적 살인마의 위험한 변명
-'정신이상' 방어막 펼치는 연쇄살인범…'지킬 박사와 하이드' 변론, 법원 판단은

[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대학 졸업 후 미국 워싱턴주 공화당 의장 비서로 고용이 된 테드 번디.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의 소유자인 그는 여성들에게 호감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주지사 추천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한 번디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둔 시기부터 그 지역에서 젊은 여성들이 사라졌다. 정치인을 꿈꾼 청년으로 여겨진 그의 정체가 밝혀진 뒤 지역사회는 경악했다. 번디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서른여섯 건이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실제 피해자는 더 많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대학생이나 유력 인사의 딸이 희생양이 됐다. "궁극적인 소유는 생명을 취하는 것과 유해(遺骸)에 대한 물리적 소유다."

번디의 주장은 상식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는 시체에 성행위를 하거나 옷을 입히기도 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번디는 자신의 범죄가 음란물과 언론의 폭력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항변은 경청할 만한 주장일까.
"왜?"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근원적인 물음이다.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이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내면에 '악마'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탈을 쓴 채 '먹잇감'을 노리는 그들. "저들은 악마 그 자체야"라고 단정하는 것으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번디의 주장처럼 다른 원인(음란물ㆍ언론의 폭력성 등)이 그들을 흉악한 괴물로 만들었을까.

[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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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범죄학 박사인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그 의문을 파고들었다.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은 세계의 유명한 연쇄살인범 쉰세 명의 범죄를 다룬 책이다. 살해 동기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범행이 사회에 미친 문화적, 법률적 영향까지 진단했다.

연쇄살인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교수는 세 명 이상을 살해하고, 사건 장소가 달라야 하며, 사건 사이에 심리적 냉각기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연쇄살인은 반복되는 범죄이며 단독범이라는 점에서 다른 살인과 다르다. 또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상대로 한 의도적 살인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연쇄살인의 잠재적인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의 책을 통해 연쇄살인범의 특성을 파악하게 되면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은 어린 시절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받았거나 어떤 결핍에 노출된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친척들은 작고 여린 영혼을 상대로 언어적ㆍ신체적 폭력을 행사했다. 상처받은 영혼의 내면에 악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회를 향한 원망과 복수, 성적인 욕망을 둘러싼 비뚤어진 인식은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스물한 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연쇄살인범 토미 린 셀즈도 그러한 경우다. 셀즈는 자신을 추행한 클라크라는 남자와 여덟 살 때부터 함께 살았다. 문제는 클라크의 행위가 셀즈 어머니의 묵인하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클라크의 성적 학대는 셀즈의 청소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셀즈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으로 자라났다. 셀즈는 유아, 어린이, 10대, 성인, 노인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살인했다.

칼, 총, 야구방망이 등 도구도 다양했다. 셀즈의 가장 큰 특징은 마지막 살인이 실패할 때까지 한 번도 살인 용의자가 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범행 유형은 단 한 가지, 살해하고 이동하는 것이다. 무임승차로 기차를 타고 다녔고 신용카드와 수표도 사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유령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돼지 농장주 로버트 픽턴은 여성 마흔아홉 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알려진 캐나다 최악의 연쇄살인범이다. 픽턴은 자신의 농장에서 '돼지궁궐에서의 좋은 시간을 위한 모임'이라는 오묘한 모임을 주선했다.

밴쿠버 매춘 여성들을 출연시켜 광란의 파티를 열었고, 2000명이나 되는 관중을 불러 모았다. 이색 파티 주선자 정도로 여겨졌던 픽턴의 정체는 서서히 드러났다.

농장을 방문했던 여성들이 연이어 실종됐다. 경찰이 농장을 수색하자 여성의 손과 발, 두개골 등 신체 일부와 피 묻은 피해자의 옷 등이 발견됐다. 픽턴은 심지어 시신을 토막 내 나무를 자르는 기계로 분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해자 인육은 돼지고기와 섞어 시중에 판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픽턴은 매춘 여성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매춘 여성이 사라졌을 때 사회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픽턴의 끔찍한 범행은 한동안 이어질 수 있었다.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이윤호 지음. 도서출판 도도. 1만8000원

연쇄살인범, 그들은 누구인가. 이윤호 지음. 도서출판 도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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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또 다른 특징은 검거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정신이상'을 방어막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변호인은 범행을 저지르게 된 '어쩔 수 없는(?)'는 이유를 토대로 무죄를 주장하거나 형을 감경하고자 노력했다.

심지어 과거 사고로 발생한 뇌 손상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가학적 살인마로 알려진 미국의 바비 조 롱이 바로 그런 경우다.

롱은 어린 시절 그네에서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헬멧이 깨질 정도의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여성을 열 명 이상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롱은 뇌 손상과 정신이상을 주장했지만 정신의학자들의 진단은 달랐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녔지만 처벌을 면할 정도의 정신질환으로 보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거론하며 자신을 변론했던 롱은 결국 사형선고 두 개, 종신형 서른네 개에다 자유형(범죄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는 형벌. 구금형이라고도 함)을 693년 선고받는 신세가 됐다.

연쇄살인범들은 살인을 하나의 유희(遊戱)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도 원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자신을 변론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사회의 폭력성이 악마적인 본능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연쇄살인범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무고한 인명에 대한 살상행위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연쇄살인을 둘러싼 '공포의 그림자'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흥밋거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연구 소재로 삼아 깊이 있게 분석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자도 그러한 인식을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이 교수는 "사상누각이나 탁상공론을 넘어서는 이론적 바탕 위의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부동산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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