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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선물공세·현금살포… 쉬지 못한 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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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을 공략하는 게 더 효과적이죠. 제대로 쉬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편합니다."

8년 후인 2025년에야 다시 찾아온다는 열흘간의 연휴에도 출근했다는 한 건설사 직원의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쉬지는 못했지만 '할 일을 했다'는 편안함까지 전달됐다. 이 직원은 연휴 기간 팀원들과 나눠 관리 사업장 내 조합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명절 인사를 건넸다. 문자로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직접 방문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비록 선물을 들고 찾았다는 고백은 없었지만 명절 인사를 했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으레 선물 보따리도 함께 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건축 수주전이 또다시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총사업비 10조원 규모의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권을 두고 두 대형 건설사가 혈전을 끝낸 지 불과 보름만이다.

오늘, 11일 오후 5000억원 규모의 잠실 미성ㆍ크로바 재건축 시공사가 결정되고 곧이어 나흘 뒤인 15일에도 1조원 규모의 사업권이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다. 7000만원의 공짜 이사비가 등장한 반포주공1단지를 계기로 정부가 강남권 재건축 수주에서의 과열 경쟁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일단 시공권을 따는 게 우선이다"는 건설사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잠실과 서초 일대 재건축 단지도 전혀 다르지 않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책임지겠다는 곳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세금 대납'으로 정부가 위법성을 조사하고 일부 조합원은 받지 않겠다고 나섰지만 마케팅은 일단 성공했다.
돈 봉투와 선물 공세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한 건설사는 조합원을 차로 태워 호텔 코스요리를 대접하고 일부 조합원에게 5만원짜리 돈 봉투를 쥐어줬다. 관련 법에 따르면 시공사로 선정되려는 건설사에서 금품을 받거나 나중에 이득을 받기로 약속한 조합원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문제는 시공사들의 과도한 경쟁이 조합원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는 점이다. 잠실 재건축 단지에서 발생한 돈 봉투 사건 후 일부 주민들이 "왜 우리는 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몇 해전 과천 재건축 사업지에서는 수 천가구에 달하는 주민 중 세입자와 집주인을 정확히 가려내 한우세트를 선물한 건설사의 정보력이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시공사가 제시한 공사비 등 세부 사업비 내역은 물론 재건축 설계 세부안을 찾아보는 주민은 많지 않다. 시공사 선정 총회가 끝난 후 조합이 수거한 사업비 내역 공개서 중에는 봉투조차 뜯지 않은 것도 많다. 재건축 사업이 적폐 덩어리란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말로만 '클린 경쟁'을 외칠 때가 아니라 건설사, 조합원 모두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선 건설사들은 "일단 따고 보자"는 생각을 버려야 향응과 금품 제공같은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아파트가 등장한 시대에 언제까지 금품살포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의 수주 경쟁을 벌일텐가. 조합원들의 노력도 절실하다. 어제 먹은 호텔 코스요리,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한우세트와 돈 봉투 모두 내일이면 내가 내야 할 부담금이 될 수 있다. 더는 강남 재건축이 적폐청산 대상이 돼서는 안될 일이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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