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전 오늘 처음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 복권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준비하시고, 쏘세요" 사회자의 말에 기다리던 여성이 버튼을 누르면 화살이 과녁의 숫자에 꽂힌다. 1980년대 TV를 통해 방송되던 주택복권 추첨 장면이다. "쏘세요"라고 사회자가 외치는 순간에 복권을 손에 쥔 이들의 시선은 화살에 집중됐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당첨되면 번듯한 집 한 채 장만하겠다는 희망은 늘 과녁을 피해가기 일쑤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기 복권인 주택복권은 48년 전 오늘인 1969년 9월15일 처음 발행됐다. 런던 올림픽 참가경비나 이재민 구호기금, 전쟁 복구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이 발행된 적이 있었지만 일회성이었다.
또 1등 당첨금이면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담고 있었다. 당시 주택복권 한 장 가격은 100원이었다. 100원이면 청자 담배 한 갑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담 배 한 갑을 포기한 대신 노려볼 수 있는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첫 당첨금은 청량리에서 과자가게를 하던 사람이 받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 서민주택 가격이 200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집을 한 채 마련하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국립대 수업료는 약 3만원이었으니 자식들 등록금 걱정도 한 번에 덜 수 있었다. 복권의 역사는 서민들의 꿈과 함께 영글기 시작한 셈이다.
첫 회에는 서울에서만 판매됐고 판매 기간은 보름이었다. 2회부터 판매 지역이 확대됐고 1970년대 초 주 1회로 발행 주기가 짧아졌다. 1등 당첨금은 1978년 1000만원, 1981년 3000만원, 1983년 1억원으로 올랐다. 1983년에는 1억원이면 서울 강남에서 큰 평형의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당첨금이 오르는 동안 TV를 통해 중계되는 추첨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화살을 쏘던 방식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공 추첨으로 바뀌었다.
주택복권은 90년대 들어서 점차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2002년 로또의 등장으로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2004년에는 한 장에 1000원, 1등 당첨금 5억원까지 올랐지만 좀처럼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2006년 4월 매주 서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던 37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발행이 중단됐다. 마지막 해 1등 당첨금도 5억원이었다.
주택복권의 당첨금이 계속 올랐던 것은 주택 가격의 상승과 무관하지 않았다. 주택복권은 없어졌지만 이제 그 자리는 로또가 대신하고 있다. 당첨금은 훨씬 많아졌지만 집값도 엄청나게 치솟았다. 그리고 여전히 복권 당첨에 내 집 마련의 꿈을 걸어야 하는 서민들의 팍팍한 삶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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