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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명동성당 앞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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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 모처럼 볕이 좋은 날 서울 명동을 산책하다 보면 평소 무심코 지나쳤을 '표지석'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명동성당 입구 왼편에 자리 잡은 이 표지석에는 '이재명 의사 의거 터'라고 새겨져 있다. 달린 설명은 이렇다. "이재명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운동가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돼 이듬해 순국했다." 그가 순국한 날이 107년 전 오늘인 1910년 9월13일이다.

다시 명동성당 앞의 의거 현장. 1909년 12월22일 이재명은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께 이완용이 성당에서 나오자 그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막는 사람이 있었지만 제압하고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고 도망가려하자 어깨를 다시 찔렀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그는 만세를 부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담배를 빌려 피웠다. 그의 나이 스물세 살이었다.
하지만 을사오적 중의 하나인 총리대신 이완용의 명은 질겼다. 일본인 의사가 집도한 흉부외과 수술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수술은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 첫 흉부외과 수술이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완용은 갈비뼈 사이 동맥에 심한 출혈이 있었고 폐 손상과 좌측 흉부타박상, 외상성 늑막염 등이 생긴 상태였다. 이완용은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고 이재명의 의거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의거를 보도한 신문 기사는 이재명의 풍채에 대해 "용모가 화려하고 눈에 영채가 있다"고 썼다. 그는 미국노동이민회사를 통해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갔는데 조국이 일제에 강점됐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첫 목표는 침략의 원흉으로 꼽히던 이토 히로부미였다. 하지만 안중근이 1909년 10월26일 이토를 사살하자 을사오적을 비롯한 친일매국노를 없애기로 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이완용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조사 중 공범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공범이 있다면 2000만 동포"라고 했다. 이듬해인 1910년 일제는 이재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최후 진술에서 그는 "왜법이 불공평해 나의 생명을 빼앗지만 조국을 위한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의 무게가 그의 순국 107주기를 맞은 날, 명동성당 앞 표지석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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