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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여의도', 왕실의 목장에서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최종수정 2017.09.11 13:56 기사입력 2017.09.09 08:00

"너나 가져라"는 지명 유래는 잘못 알려진 속설
왕실 목장이던 '너벌섬'에서 비행장, 금융과 방송의 중심지로 변모


여의도 야경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서울 여의도 지명과 관련 예로부터 전해지는 속설이 하나 있다. 섬 이름 자체의 의미가 "너나 가져라"란 뜻이라는 속설이다. 한자 여의도(汝矣島)의 맨 앞에 '너 여(汝)'자가 붙은 이유가 이 때문이란 것.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어떤 공주가 시집가면서 왕에게 하사받으면서 너나 가지란 말을 들어서 생긴 지명이란 이야기까지 전해지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속설에 불과하다.

여의도의 순우리말 지명은 '너벌섬'으로 넓은 섬이란 뜻이다. 한강 중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지점에 꽤 큰 면적을 지닌 여의도는 예로부터 너벌섬으로 불렸으며 한자 지명은 이 너벌섬을 음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汝)자는 '너'라는 발음을, 의(矣)는 예전에 옷을 뜻하는 의(衣)가 변형된 것으로 옷을 세는 단위인 '벌'을 음차한 것이다.

여의도를 뜻하는 다른 지명들도 풀어보면 모두 너벌섬이란 지명과 연결된다. 원래 여의도는 '잉화도(仍火島)', 혹은 '나의도((羅衣島)'라 불렸는데 이 역시 모두 앞서 여의도를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너벌섬을 음차해 적기 위해 빌려온 한자 지명들이다. 또한 예로부터 왕실의 목장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너나 가지라고 주는 섬이 아니라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던 땅이었다.

대동여지도에 나온 여의도 부분(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왕조실록 세종3년(1421년)의 기록에 따르면 잉화도에는 축목장(畜牧場)이 있으며 관원들을 보내 목축을 감독한다 했으며 이어 명종 11년(1556년)에는 잉화도의 관노비들이 근친 간 통혼을 하며 습속이 음란하다며 섬의 인가를 모두 철거하고 가축을 기르는 일은 오로지 남자만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 영조 27년(1751년) 기록부터 여의도라는 지명이 최초로 등장하며 조선조 말기인 고종시대 기록에는 양 50마리, 염소 60마리를 기른다고 기술돼있다.
이 동물농장인 섬의 운명이 뒤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다. 일제는 당시 서울 주둔군이 배치됐던 용산 기지와 가까운 이 섬에 1916년 간이비행장을 건설했다. 여의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22년 12월5일 조선의 파일럿으로 유명했던 안창남 선생이 5만여명의 인파 속에서 비행하고 착륙한 곳도 바로 이 여의도 비행장이었다.

1978년 개발 당시 여의도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해방 이후 1958년 김포국제공항으로 여객업무가 이관되기 전까지 서울의 공항으로 이용되던 여의도는 1970년대 여의도 개발계획에 의해 도심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0년 2월10일 밤섬이 폭파되고 이후 여의도의 제방인 윤중제가 준공되면서 간척사업으로 면적이 늘어난 여의도는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면서 일단 정치의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듬해 한국방송공사(KBS) 사옥이 준공되고 1980년에는 TBC가, 1982년에는 MBC, 1990년에는 SBS가 입주하면서 방송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금융의 중심역할을 하며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불리기도 했다. 증권의 중심인 한국거래소가 여의도에 들어오면서 각종 증권사와 금융기관들도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주거 인구가 아예 없는 도심지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의도동은 엄연히 주거지역 아파트가 존재하는 곳이다. 지난 2015년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여의도동 인구는 3만3991명이다. 서울아파트와 시범아파트, 공작아파트 등 재건축을 준비 중인 단지들도 많아 아파트 가격 역시 부동산시장에서는 중요한 척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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