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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검 삼국지]③2500년이 지나도 녹 하나 슬지 않은 중국의 월왕구천검, 비결은?

최종수정 2017.09.08 12:43 기사입력 2017.09.08 11:45

월왕구천검 모습. 2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전혀 녹이 슬지 않은 원형을 유지한 청동검이다. 실전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사진=위키피디아)

동아시아에서 명검의 원조 국가라고 하면 단연 중국이다. 시대별로 다양한 유목민족들의 지배가 이어졌던 중국은 도검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도검 기술도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에 완성을 이뤘고 당시 도검 중 남아있는 실존 유물도 있다.

이 실존 유물은 보통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사자성어로 유명한 인물인 월왕 구천(勾踐)의 검이다. 오늘날에는 '월왕구천도(越王勾踐劍)'라 불리며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장링(江陵)의 망산일호초묘(望山一號楚墓)에서 출토됐다. 청동검으로서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녹이 슬지 않았으며 보존상태는 매우 우수하다.

칼날도 그대로 살아있어 지금도 칼날에 종이 여러장을 대도 그대로 잘릴 정도로 날카롭다고 한다. 이로 인해 19세기 이후에 등장한 크롬 도금이 된 검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실제로 그런 도금은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부장품으로 들어가면서 산소차단이 완벽하게 이뤄지면서 전혀 부식이 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월왕 구천의 옥검(사진=중국 후베이(湖北省) 박물관)

이 검을 누가 제작했는지는 정확치 않으나 당시 전설적인 명검 제조가인 간장(干將)과 막야(莫耶) 부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간장과 막야는 당시 최고의 도검 제작자 부부의 이름이자 이들이 만든 두자루 검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간장은 천하 제일의 광석을 모아 검을 만드려 했으나 도무지 철이 녹지를 않아 고민했는데 아내 막야가 자신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넣자 녹았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또다른 일설에는 간장과 막야가 만든 도검은 쇠도 잘랐다 하는데, 이는 보통 광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운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원래는 오나라에 바쳐졌던 명검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자 간장과 막야의 명검들은 모두 구천의 손으로 들어왔고, 그는 죽으면서 이 검 3000여자루를 부장품으로 묻었다 전해진다. 이중 일부를 삼국지의 유명한 오 황제, 손권이 출토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국 한나라 때 도검 복원모습(사진=위키피디아)

중국은 한나라 때까지는 주로 이런 형태의 직선형 도검이 유행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수십만에 이르는 장창병과 원거리 궁수대의 교전에 익숙했던 전장이라 주로 짧은 거리에서 찌르는 도검이 많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4세기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변방의 이민족들이 중원을 지배해 그들의 도검 문화가 유입됐고, 13세기에는 몽골의 지배를 거치면서 다양한 도검문화가 융합됐다.

보통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의 명도인 청룡언월도나 여포가 썼다는 방천화극 등은 실제론 당시에 없던 무기들이다. 마상용으로 도검과 창이 결합한 언월도가 등장하는 것은 10세기 송나라 때 이후이며 많이 등장한 것은 몽골의 지배 이후부터였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이 몽골의 지배를 받던 14세기 중엽에 살던 인물임을 고려하면 한나라 때 고증보다는 당대 쓰이던 무기를 기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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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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