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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카사노바, 70명 농락한 원조 있다

최종수정 2017.09.01 13:40 기사입력 2017.09.01 11:02

한국 사회 발칵 뒤집은 '박인수 사건'을 아시나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9명의 여성과 교제하고 성관계 사진이나 동영상을 몰래 찍어 돈을 뜯어낸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여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문대 의대생을 사칭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른바 '한국의 카사노바'의 수법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약 1년 동안 교제하던 유부녀 A씨가 이별을 원하자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4000만원을 뜯어낸 20대 남성 B씨가 구속됐다. 문제는 경찰이 B씨가 보관하고 있던 다수의 여성 나체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을 발견하면서 커졌다. 사진과 영상 속의 여성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었다. 조사 결과 B씨는 총 9명의 여성들에게 이 사진과 영상을 이용해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조사가 다 이뤄지면 피해 금액도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B씨가 대학도 나오지 않은 고졸인데 명문대 의대를 다닌다고 속이며 여성들에게 접근했다는 점이다. 이 같이 신분을 속여 여성들을 농락했던 '한국의 카사노바' 사건은 과거에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박인수 사건'이다.

때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54년이었다. 군에서 전역한 박인수는 댄스홀을 들락거리며 1년 동안 70여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 그는 군에서 헌병대 대위로 근무했었는데 당시 배웠던 사교춤 실력에 여자들이 넘어왔다고 한다. 전역했지만 장교 신분증은 있었고 전후 혼란기에 현역 장교라고 하면 지금의 명문대 의대생 사칭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박인수가 농락한 70명의 여성들은 대부분 여대생이었고 고위직의 딸도 있었다.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던 시절, 한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박인수는 혼인빙자간음죄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지만 그 이후 더 화제를 몰고 다녔다. '희대의 색마'라고 손가락질 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재판장에는 인파가 넘쳐났다. 박인수가 혼인빙자간음죄를 부인하며 "나는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자들이 제 발로 따라왔다"고 하자 성 관념을 개탄하는 목소리로 사회가 들끓었다. 그가 70명의 여성 중 처녀는 한 명뿐이었다고 하자 '순결 확률 70분의 1'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결정타는 1심 판결이었다. 1955년 7월22일 박인수의 혼인빙자간음죄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인수보다 그에게 농락당한 피해자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1950년대 한국 사회의 여성관이 반영된 결과였다. 결국 박인수는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1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그런데 박인수가 이런 엽색 행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군 복무 중 애인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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