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후반부에 한 오사카 조선학교 고교 럭비부 학생이 일본의 고교무상화 차별 정책에 항의하며 한 말이다. 몸을 부딪치는 ‘날것’들의 땀냄새와 우정, 대책없이 밝고 펄떡이는 유머가 어우러진 ‘청춘 스포츠’ 영화라 할 만하다.
2010년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만 고교무상화 정책을 적용치 않기로 했다. 영화 속에서 오사카 시장은 이를 “권력 행사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조선학교 같은 학교가 한국에 존재했다면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조선적(朝鮮籍)’이라는 경계인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1947년 재일동포들에게 부여한 외국인 등록상 명칭이었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다수가 한국 국적으로 바꿨지만 일부는 조선적을 유지했다. 분단이 아닌 통일된 조국의 국민이고 싶다거나, 북한에 친척이 있어 그들에게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하는 등의 이유였다. 이들은 외국 여행에 제한을 받는 등 차별을 받으며 사실상 무국적자로 살아왔다.
역사 속에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은 소속된 개인의 삶을 이리저리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때로는 차별과 고난의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처 받은 짐승처럼 긴 시간을 버텨냈을 그들에게 ‘사이드’를 그어 다시 ‘회귀 본능’조차 막는 것은 가혹하다. “이것이 국가다”라고 자신하는 정부라면, 그들을 품어주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영화에서 오사카 조선학교 럭비부의 주전 선수 한 명은 꿈에 그리던 전국대회 초반에 부상을 입어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된다. 황소 같은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대회가 모두 끝난 후, 일본의 고교 럭비부 최강 선수들이 오직 그를 위해 한데 모여 깜짝 드림팀을 꾸려 친선경기를 마련한다. 상처는 그렇게 위로되고, 그는 대학에 진학해 전국대회 우승에 공헌한다. '노 사이드'를 위한 노력은 언제나 유효하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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