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속 풀어주는 해장 음식을 찾아서…(15)어묵탕
◆길에 서서 종이컵으로 마신 해장국 = 거나하게 취한 어느 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 더 이상 '한 잔 더'의 유혹이 아닐 즈음, 하지만 그냥 가기엔 함께 밤을 지새운 술벗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운 그 시간 우리는 어디로 갈까. 가게에 자리 잡고 요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얼른 들어오라는 성화에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 때 어묵 한 꼬치 먹을 수 있는 노점을 발견하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오뎅, 오뎅탕? = 이 길거리 음식을 부르는 말은 '오뎅'이다. 오뎅은 어묵의 일본말이라고 흔히 여긴다. 주점 메뉴판에서도 어묵탕을 버젓이 오뎅탕이라고 쓴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묵과 오뎅은 다르다. 어묵은 생선살을 으깨 만든 음식인데 일본어로는 '가마보코(かまぼこ)'다. 오뎅(おでん)은 이 어묵과 계란, 무, 유부, 소 힘줄 등이 들어간 국물요리다. 이를테면 어묵탕이 오뎅인 것이다. 오뎅탕은 잘못된 말인 셈이다. 오뎅은 요리의 이름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의 이름으로 와전됐다.
그렇다면 어묵은 어쩌다 오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식탁 위의 한국사'에 일본에서 가마보코에 대한 기록은 16세기 초반에 쓰인 '종오대초자'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숙종(1661 ~ 1720)의 어의 이시필이 쓴 글에도 이 가마보코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무렵 일본 음식 가마보코가 국내에도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어묵탕이라고 하든 오뎅이라고 부르든 생명은 국물 = 어묵탕, 혹은 오뎅이 해장 음식일 수 있는 것은 그 국물 맛에 있다. 으깬 생선과 여러 재료가 오랜 시간 어우러져 스며든 국물은 술에 취한 속을 부드럽게 달랜다. 국물 한 숟가락과 그 국물 배어든 어묵을 같이 씹다보면 담백하지만 한편으로는 풍성한 맛이 혀를 감싼다. 입안을 가득 채운 이 한입을 넘기면 어느새 취했던 기억도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언론인 홍승면 선생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 잡지에 연재했던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오뎅에 대해 "삶은 요리이고 보면 맛의 생명은 재료와 국물에 달렸다. 재료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할 것이 없지만 국물에 대해서는 시간을 강조하고 싶다"고 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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