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 개봉한 영화는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소년이 1급 살인죄로 기소되면서 시작된다. 유죄가 확정되면 소년은 전기의자에 앉아야 한다. 유무죄를 가리기 위해 12명의 배심원이 모인다. 피의자는 유색 인종, 배심원은 모두 백인. 사건 정황과 증언도 피의자에게 불리하다. 게다가 좁은 배심원 사무실과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결론은 일찌감치 기울었다. 유죄!
'일본 사법계의 돈키호테'인 세기 히로시 교수는 좀더 노골적이다. 그의 최근 저서 <절망의 재판소>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본 사법부를 힐난한다. "피의자 인권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억울한 죄를 낳기 쉽다"거나 "정신적 압박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내는 '인질사법'이 억울한 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같은 문제의 원인을 '히에라르키(Hirearchie)'로 규정한다. 사법부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이다. 그 바람에 조직의 심기를 알아서 헤아리는 판결이 늘어난다. 이런 재판관들을 향해 그는 '법복을 입은 공무원'이라고 쏘아붙인다. 거칠고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돈키호테의 일침을 '궤변'으로 일축할 수 있을까. 일본 제도를 따온 우리 사법부는 또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재판부의 고뇌는 능히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좌고우면하지 말고 단도직입하는 게 옳다. 정황이나 의혹이 아닌 증거와 사실만을 바라보면서. 증거법정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판결은 원래 고독한 법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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