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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몰랐어, 내가 투기꾼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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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여름휴가 중, 오랜만에 전화를 건 후배가 받자마자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다. "휴가 중이니 다음에 얘기하자"며 끊으려고 했지만 "이번 부동산 대책 때문에 다 틀어졌다"며 툴툴거리는 후배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왜?", "우리 부부 합산 연봉이 7500만원 정도 된다. 그럼 우리도 투기꾼으로 묶이는 거냐?"
'맞벌이 찬양론자'인 후배 부부의 합산 연봉은 7500만원. 후배는 정부가 이번 '8.2 부동산 대책'에서 대출 완화 기준을 '부부 합산 연 소득 6000만원(생애 최초는 7000만원)'으로 잡은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8ㆍ2대책 후 서울은 주택담보대출비율( LTV)ㆍ총부채 상환비율(DTI)이 각각 40%로 강화됐다. 정부가 투기과열지역 및 투기지역의 대출규제를 일괄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다만 실수요자라면 LTVㆍDTI가 10%포인트씩 완화된다. 이 때 실수요자의 기준은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원이다. 후배 말처럼, 이 기준으로 본다면 연봉이 6000만원을 넘어서면 '잠재적 투기꾼'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결국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려던 후배의 계획은 무기한 중단됐다. 본가가 위치한 서울 성동구에 6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하려던 후배는 대출 규모가 종전 3억6000만원에서 2년치 연봉이나 더 빠져 집을 살 방법이 없다며 한탄했다.

그렇다고 이 젊은 부부에게 청약시장으로 눈을 돌리라는 조언을 할 수도 없었다. 청약통장 가입기간과 무주택기간이 짧은 데다 부양가족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청약가점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서다. 더욱이 청약가점제 비중이 다음달부터 확대되면 자녀가 많은 장기 무주택자들에게 계속 치일 게 뻔하다.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은 여전히 '로또'다. 당첨 자체가 어려운 데다 부부가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이 6000만원을 넘어서면 자격 조건이 되지 않아 이 역시 도전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이번 규제는 당연히 필요했다. 수백 대 일을 넘는 청약 광풍에 눈 뜨고 일어나면 수천만원씩 오르는 강남 집값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대출규제에 이어 이제는 보유세까지 거론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예상대로라면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고 공개적인 임대사업에 나서야 한다. 쏟아진 매물에 집값은 하향 조정돼 실수요자들만 거래에 참여하는 이상적인 시장이 구축된다. 그러나 규제 강도가 강한 만큼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다주택 자산가들은 일단 시장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 일부에서 급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 이 와중에 집값을 지키기 위한 투기 잔당들의 저항도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한 커뮤니티에는 세금폭탄이 두려워 급매물을 내놓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

집을 살 능력이 안된다면 안사는 게 맞다. 8ㆍ2대책이 집값의 절반을 넘게 대출받아 산 후 집값을 올려 차익을 남겨 먹은 투기 세력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려 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런데 부동산을 적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한계가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본인도 "집값을 많이 올려 내 자식에게만 물려줄 게 아니라 청년들이 진입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가만히 앉아 엉뚱하게 투기꾼이 된 젊은 사람들의 대한 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바라는 정상적인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려던 정상적인 실수요자들이 필요하다. 앞선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투기세력 잡기에만 집중한 탓에 놓쳤던 배려책이 아쉬운 이유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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