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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미국특허사용료 세금 판결문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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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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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우리나라 국세청이 마땅히 받아야 할 세금 9000억원을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세금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에 특허를 제공하고 받아 가는 사용료에 매기는 것이다. 국세청이 과세를 하긴 하는데 곧바로 소송에 걸리고 대법원은 미국 특허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기계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MS의 윈도 등 운영체제를 사용해 노트북을 만들면서 MS에 약정된 특허 사용료를 지급한다. 이때 삼성전자는 세법에 따라 특허 사용료의 15%를 원천징수해 국가에 납부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 특허 사용에 대한 대가는 한국에서 과세될 수 있다'고 규정한 한미 조세조약 제6조에 따른 것으로 1979년 이후 과세해왔다.
그런데 2007년 갑자기 미국 특허권이 한국 특허청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사용지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른바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인데, 이는 미국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다.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미국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했는데도 그 특허가 한국에 등록돼 있지 않다면 사용지는 한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음에도 '사용지가 한국을 전제로 한 과세'는 무효라는 판결이 뒤따랐다.

이후 정부와 국회는 2008년 '국내에서 제조ㆍ판매 등에 사용된 특허는 국내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세법을 개정했다(법인세법 제93조 제8호 단서조항). 그러나 이후에도 대법원 판결은 변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특허권 속지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세관청 세금 부과 → 납세자의 변호사 선임 → 대법원에서 국가패소 → 세금 환급'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매해 9000억원 정도의 세수(稅收) 손실을 보고 있다. 이는 연간 대법원 운영 예산(1조6000억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법원의 속내는 법인세법 개정이 아닌 한미 조세조약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본인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조세조약의 개정은 입법부가 동의하고 행정부가 비준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입법부가 마련한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다. 판례를 통해 입법권을 행사하려는 행태(판례 입법)는 자제되어야 한다.

국제법상 조세조약의 해석 원칙은 조세조약대로 하되, 규정이 없다면 국내 세법 규정을 따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 조세조약에 사용지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면 당연히 개정된 국내 세법을 따라 대법원이 해석하면 될 일이다.

국제 조세 분야의 전문가들도 대부분 미국 특허 사용료에 대한 과세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 등 논란이 많은 가치판단 사항이 아니다. 어느 법을 적용하느냐 하는 단순한 '법원성(法源性, source of law)'의 문제다. 우리 세법조문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대법원은 왜 굳이 국제 관습이나 미국 법만을 따르려 하는가.

대법원으로선 이 문제를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원 합의체에 회부하여 전체 대법관 이름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법원조직법 제7조). 모름지기 대법관은 일반 법관과 달리 사건 기록을 보고 판결문을 쓰는 일 외에 국익과 공익을 고려하는 시각을 지녀야 한다.

만약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도 과세 관청이 패소한다면 국세청은 과세 처분을 중단해야 한다. 변호사만 배불리는 일을 계속해선 안 된다. 적폐다. 우리 대법원의 대승적인 판단과 결정을 고대한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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