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김세영의 갤러리산책] 인간 때문에 죽어가는 환경, 콕 찍어 꼬집다

최종수정 2017.07.13 10:30 기사입력 2017.07.13 10:30

댓글쓰기

점묘화가 이철원 개인전 '점(點)막을 깨다' 23일까지
2013년까지 대기업 다니던 엘리트
환경다큐멘터리 본 뒤, 퇴사하고, 창의적 작업 찾아
국제기후환경단체서 활동하며 기후변화 관심

이철원 작가 [사진제공=갤러리 스페이스 옵트]

이철원 작가 [사진제공=갤러리 스페이스 옵트]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달콤한 열매가 아니다. 다크 체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붉게 물든 인간의 두개골이 달려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 지구에 여러 영향을 미친다. 과일, 커피, 차(茶) 등은 급격히 수확량이 떨어진다. 멸종위기 과일에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을 결합시켰다.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대로 전달되려면 메시지가 간단해야 한다."
점묘화가 이철원(33)은 예술가이자 환경운동가다. 2006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재료공학 학사를 마치고, 2012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까지는 LG CNS 앤트루 컨설팅에서 책임 컨설턴트로 일했다. 지금은 패션 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가 스펙트럼을 넓혀오는 데는 다재다능함과 더불어 부모에 대한 효심과 배려가 작용했다.

이철원은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첫 번째 직장을 구하고 나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그럴 때 영국 유학시절 알고 지낸 친구들이 만든 환경다큐멘터리 '오버뷰(Overview)'를 봤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 다녀온 뒤 겪는 인지 변화를 다룬 인터뷰 위주의 작품이었다. 친구들을 보니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후변화 시리즈1(2015) - 체리 스컬 by HI-TEC-C 0.3mm 및 0.4mm [사진=이철원 작가 포트폴리오]

기후변화 시리즈1(2015) - 체리 스컬 by HI-TEC-C 0.3mm 및 0.4mm [사진=이철원 작가 포트폴리오]

대기업을 그만둔 이철원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환경운동가인 엘 고어 전미부통령(69)이 2006년 설립한 국제기후환경단체(The Climate Reality Project) 소속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다. 자연스럽게 작품에도 환경문제를 반영했다. 그는 단체의 2014년 환경운동가 양성 프로그램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작품활동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난해 11월까지 국내에서 프레젠테이션 활동을 했다. 현재도 단체의 SNS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철원은 "엘 고어의 다큐멘터리(불편한 진실)를 본 뒤, 처음에는 한 달에 3만 원정도 기부만 했는데 그 환경단체에서 활동가도 양성하더라. 1년에 두세 차례 연수를 했는데 에세이를 써 합격하고 교육을 받았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동기부여도 됐다"고 했다. 그곳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을 만났다. 동아시아인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는데다가 한국에서 온 미술가라는 점이 주목받아 인터뷰도 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동아시아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국가로 분류됐다. 동남아시아에 비해 홍수나 가뭄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_기후변화 시리즈3_(2017)_오렌지 스컬/자화상_(2014)/점묘화 시리즈5_(2015)_동냥/ 점묘화 시리즈1_(2014)_가필드 오마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_기후변화 시리즈3_(2017)_오렌지 스컬/자화상_(2014)/점묘화 시리즈5_(2015)_동냥/ 점묘화 시리즈1_(2014)_가필드 오마쥬



미술과의 인연은 꾸준히 이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선 미술대학 학생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취미로 미술학원을 다녔다. 영국 유학시절 미술 수업을 들어봤는데 한국과 달랐다. 못 그려도 아이디어와 표현력을 중시했다. 원래 공대보다 미대 진학을 원했다. 한국에서 수능 보듯, 성적을 최대한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긴 공백기를 거쳐 2013년부터 점묘화를 시작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점묘화는 그가 작품다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유일한 화법이었다. 물론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는 "점묘화는 중간에 명암을 하나 잘못 표현해도 그 주위에 더 많은 점을 찍어 보완할 기회가 있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한 분야다. 정성을 쏟을수록 작품의 질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엉덩이 싸움"이라고 했다.

작업은 연필스케치를 먼저 해 구도를 잡은 다음 펜으로 완성해 나간다. 퇴근을 한 뒤 주중에는 하루 너댓 시간, 주말에는 열 시간씩 작업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두 달에서 석 달이 걸린다.그는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집에서 나가지 않으니 친구들이 'DKNY'(독거노인)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짜 행복하다"고 했다.

점묘화 작업 과정 [사진=이철원 작가 포트폴리오]

점묘화 작업 과정 [사진=이철원 작가 포트폴리오]



2015년 10월 첫 번째 개인전(점말이야)을 열었다. 그간 점묘(猫)화 시리즈(2014~2015), 기후변화 시리즈(2015~2017)를 통해 동물과 자연환경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색과 빛의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는 점묘화로 메시지를 전했다. 작품에는 이철원의 철학이 스며들었다. 그는 국내에서 기후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을 보거나 프레젠테이션 나가 질문을 받아보면 기본적으로 '내가 바뀌어야 한다'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타 국가, 혹은 남 탓을 하거나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시킨 질문이 많다. 이 점이 가장 안타깝다. 미국 보수단체 중에는 기후변화를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세먼지를 많이 발생시키는 중국이 재생에너지 투자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하기도 한다. '나 때문에, 인간 때문에'라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이철원은 이제 전업 작가를 꿈꾼다. 그는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다. 주변 평가도 그렇고 작품에 만족하고 있다. 나이가 든다고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문제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싶다"고 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갤러리 스페이스 옵트'에서 열린 이철원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점(點)막을 깨다'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 전경 [사진=이철원 작가 제공]

전시장 전경 [사진=이철원 작가 제공]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