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6.25 일으킨 주범? 로젠버그 부부를 사형시킨 미국

최종수정 2017.06.20 10:18 기사입력 2017.06.19 18:21

원폭 기밀 빼낸 스파이…한국전쟁 휴전 앞둔 1953년 6월19일 전기의자 앉아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 미국에서 간첩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로젠버그 부부. 남편의 미미한정보전달과 그런 남편의 압박을 위해 기소된 아내의 무고는 끝내 사형에 이르렀고, 이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자 냉전의 희생양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모든 사람은 자기 조국의 적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나라의 적이다. 모든 국가는 자기 국민의 적이다.”

미국 소설가 E.L 닥터로는 데뷔작인 ‘다니엘서’에서 현대 시민의 생존 문제를 냉철하게 지적한다. 그는 책에서 최종적 실존의 조건을 ‘시민권’이라 규정했는데, 그 배경엔 그가 모티브 삼았던 비운의 주인공 로젠버그 부부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끝낸 것은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원자폭탄의 공이 가장 컸다. 핵무기를 유일하게 보유함으로 막강한 위세를 세계무대에 과시한 미국의 자리를 이내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며 바짝 뒤쫓기 시작했다. 사진은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RDS-1과 개발자 율리 보리소비치 박사의 모습. 사진 = wikipedia

핵 독점 종언, 매카시즘 광풍에 ‘공산주의자’ 색출 엄명

줄리어스 로젠버그는 1950년 7월 17일, 자택서 면도 중에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FBI(미연방수사국)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한 달도 채 안 돼 아내 에설 로젠버그 역시 긴급히 체포됐다. 이들 부부의 혐의는 ‘간첩’, 원자폭탄 핵심 제조기술을 소련에 넘겼다는 것이 혐의의 배경이었다.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자국 내 스파이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1950년 2월 조지프 매카시가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나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합니다. 내 손에는 그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고 말한 데서 촉발한 ‘매카시즘’의 광풍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 내 반감을 극대화 시켰다.

1950년 6월 체포 당시의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의 모습. 그는 훗날 자신의 형량협상을 위해 매형의 이름을 수사 중 언급했다고 시인했다. 사진 = wikipedia

처남의 자백, 줄리어스는 진짜 간첩이었을까?

1950년 6월 FBI는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색출작업 수행 중 로스알라모스의 원자폭탄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를 간첩혐의로 체포했고, 그는 자신의 매형 줄리어스 로젠버그를 통해 소련에 원자폭탄 기밀을 넘겼다고 자백한다.

가난한 유대계 이민 자녀로 태어난 줄리어스는 18세 때 청년 공산주의자 연합에 가입했고, 여기서 만난 여인 에설 그린글래스와 사랑에 빠져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는 21세에 미 육군 통신부대에 들어가 군 생활을 이어갔지만 공산당 가입 사실이 밝혀져 복무 7년째에 군에서 추방됐고, 이후 개인사업을 하던 중이었다.


1951년 재판을 앞두고 이송 중 촬영된 로젠버그 부부의 모습. 이들은 재판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제물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한국전쟁의 전황악화 역시 부부의 재판에 악재로 작용했다.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부부는 1953년 6월 전기의자에 앉아 숨을 거뒀다. 사진 = history.com

원자폭탄 기밀 유출은 살인보다 더한 범죄

기다렸다는 듯 FBI 국장 애드거 후버는 로젠버그 부부를 가리켜 ‘세기의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51년 3월 6일 이뤄진 재판에서 판사 어빙 카우프만은 로젠버그 부부에게 “부부가 소련에 원자폭탄 기밀을 넘김으로 인해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따라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으므로 이들은 살인보다 더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고 부부를 맹비난했다.

때마침 한국전쟁에서의 미군의 전황이 좋지 않았다. 부부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고, 얼마 뒤인 4월 5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로젠버그 부부는 1953년 6월 19일 뉴욕주 싱싱교도소 전기의자에서 나란히 죽음을 맞았다.

후일 냉전이 종식되고 로젠버그 부부와 소련간의 관계에 대한 자료가 공개되며 줄리어스가 진짜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한 행적이 드러나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그러나 그가 넘긴 정보는 원자폭탄의 핵심 기술과는 거리가 먼 스케치에 불과했고, 더욱이 아내 에설은 아무런 혐의가 포착되지 않았다. 남편의 자백을 위해 볼모로 삼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목숨을 잃은 부부 앞에 처남이자 남동생이었던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는 2001년, 자신이 FBI 체포 후 털어놓은 자백은 형량을 낮추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플리바게닝(형량협상제, 검찰이 수사 편의상 관련자나 피의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을 하는 대가로 형량을 경감하는 협상제도) 이었음을 시인했다. 억울한 죽음이 반세기 만에 바로잡힌 것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늘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