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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웃지 못할 월세 입주자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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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라며 직업을 묻는다. 짤막한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장 이름을 묻는 다음 질문이 훅 들어온다. 이유를 묻자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집주인의 속내를 전한다. "대기업에 다니시는 분을 원하십니다. 월세가 200만원을 넘다보니 한 달만 밀려도 골치가 아파서…" 결국 집주인이 찾는 세입자가 아니라며 퇴짜를 맞았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받은 초고가월세 '면접'이다. 면접관은 중개업소 대표였다. 월 2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월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집주인님이 불편하시지 않도록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사람'임을 검증받아야 한단다.
사실 집주인이 세입자를 가려받는 일은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전세 매물이 부족할 땐 자녀가 없다고 속이는 세입자는 물론 신혼부부라고 속이는 세입자도 많다. 다자녀 세입자를 꺼리는 집주인들을 맞추기 위해 예비 세입자들이 하는 선의의 거짓말인 것이다. 하지만 고가 월세 면접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한 건 최근 1년 새 일이다. 월세 매물의 증가와 함께 부동산 임대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생긴 풍경이다. 세를 놓는 집주인들 입장에서 매달 정해진 날짜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역시 일종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볼 수 있다. 월세로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집주인이라면 더 그럴테다.

따지고 보면 고가월세 면접도 부동산 폭등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중 하나다. 집값이 올라 전세와 월세 등 임대차 시장마저 자극하다보니 투자자들이 본인들만의 안전장치로 '면접'을 만든 것이다. 정부의 엄포에도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해괴망측한 면접은 이제 일상다반사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심장 발작으로 쓰러진 30대 환자가 77분에 걸친 CPR(심폐소생술)로 살아났다는 기사를 봤다. 감동적인 얘기지만 한때 같이 안전요원으로 몸 담았던 예전 동료들 사이에서 큰 화제거리였다. 단연 생명이 달린 긴박한 상황이긴 하지만 CPR 자체가 워낙 체력 소모가 큰 일이다 보니 웬만한 안전요원도 30분 이상 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게 이 기사의 교훈인 셈이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모든 정부가 나름대로 '맞춤형 정책'을 내놨지만 투기 수요는 미꾸라지처럼 살 길을 찾아냈고 대부분의 정책은 실패로 귀결됐다. 부동산 정책 역시 단기 대응이 아닌 집요한 관심 속에서 장기전으로 대응해야 승산이 있다.

공교롭게도 참여정부를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집값 폭등과 마주하고 있다. 이 역시 참여정부 시절과 똑같은 모습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전 정부에 물려받은 부동산 거품을 조기 진화하지 못했고 급기야 "부동산 빼고는 꿀릴 게 없다"며 실패를 시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만큼은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규제 카드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즉각적인 대응으로 '반드시 시장을 잡겠다'고 덤벼들었다간 자칫 서민과 부유층 모두에게 반감을 살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을 5년 임기내 해결할 중장기 과제로 보고 단계적인 정책을 차근차근 시행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만큼은 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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