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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달력이란 뜻의 '캘린더', 원래 의미는 '차용증'?

최종수정 2017.06.02 11:07 기사입력 2017.06.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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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영어사전에서 '캘린더(calender)'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달력, 일정표, 행사표 등의 의미로 쓰인다. 연말연시 달력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들여다보게 되지 않는 단어지만 그 어원을 살펴보면 의외의 뜻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차용증'이란 의미다.

캘린더는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이란 단어에서 나왔는데 원래 칼렌다리움은 채권, 차용증, 금전출납부 등 채무자와 채권자간 관계 증명을 하는 문서를 통칭하는 용어였다고 한다. 빚쟁이들에겐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다소 어두운 의미의 단어였다.
로마시대 석판 달력(사진=aracelirlunpocodehistoria.blogspot.com)

로마시대 석판 달력(사진=aracelirlunpocodehistoria.blogspot.com)


그런데 차용증과 달력이란, 매우 이질적인 두가지 의미가 어떻게 한 단어 속으로 들어오게 됐을까? 이것은 고대 로마의 특이한 관습법 때문이었다. 로마에서는 매해 1월1일, 모든 로마 시내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신전에서 주관하는 의식을 치르면서 새해 달력을 받았는데 이때 채권자와 채무자들이 모여 기존 채무관계를 재조정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넘어온 관습이라고 알려져있다. 고대 채무관계의 기본 기한은 1년이고 매해 첫날에 채무자와 채권자가 만나 돈을 갚거나 기한을 연장해야만 했다. 그러나 채무자들이 이런 의무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가기 일쑤다보니 보다 강력한 법이 필요했고 결국 매해 첫날 채무자들을 나오게 하기 위해 이런 관습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매해 첫날 광장에 나와 채권자와 채무관계 협상에 나서지 않는 채무자가 있으면 바로 추방할 뿐만 아니라 로마 내의 모든 재산을 동결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새해 첫날은 달력을 받고나서 어렵게 만난 채권자와 채무자가 칼렌다리움을 대조해놓고 격론을 벌이는 날이었고, 자연스럽게 캘린더는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고 태어났다는 것.
이렇게 당국이 채권자 위주의 관습법을 지켜주던 고대 로마시대가 끝난 후, 중세가 시작되면서 칼렌다리움을 대신해 중세시대 채무관련 기본 단어로 떠오른 것이 '뱅크(Bank)'란 단어다. 뱅크는 이탈리아어로 '방코(Banco)'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돈이나 채권 등의 의미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그저 '의자'란 의미였다.

중세시대 환전상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중세시대 환전상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당시 카톨릭교회의 중심지인 로마에는 수많은 성금과 봉헌물들이 들어왔는데, 유럽 전역에서 몰려온 것들이라 화폐도 물건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보니 이것의 가치를 매기고 환전을 할 업자들이 필요했고 수천년전부터 성지 예루살렘에서 환전업에 종사했던 이탈리아 내 유태인 대부업자들이 대거 이 업무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처음에 의자하나를 놓고 환전을 하고, 대부업도 함께 했기 때문에 뱅크란 용어가 생겨났으며, 이 사업이 확대돼 은행이 됐기 때문에 은행을 지칭하는 용어가 뱅크로 굳어졌다.

하지만 고대 로마시대처럼 정부가 나서서 채권을 보호해주는 개념보다는 반대로 채무자가 빚을 못갚게 됐을 때 탕감해주는 경우가 훨씬 잦았다. 각국의 임금들도 전쟁으로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난 후, 채무불이행을 서슴지 않고 했으며 이를 따지는 대부업자들을 무력을 동원해 죽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흉년이 들거나 기근이 발생하면 유태인들에 대한 린치나 학살이 많이 자행될 수밖에 없었다. 중세시대 유태인들은 농사나 다른 일반 직종에 절대 진입할 수 없었고 대부업 외에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누적된 유태인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분노와 학살의 역사는 훗날 나치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16세기 이후 중국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던 은화(사진=위키피디아)

16세기 이후 중국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던 은화(사진=위키피디아)


한편 동양에서는 이 뱅크와 동일의미로 쓰이는 은행(銀行)이란 한자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출발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상인조합을 '항(行)'이라고 했는데 이 '行'자는 다닌다는 의미에서는 행으로 읽지만 좌판이나 점포란 의미로 읽을 때는 항이라고 읽는다. 이 항 중에서도 은을 취급하는 은항이 나중에 금융업의 주체가 되면서 뱅크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됐다. 16세기 이후 아메리카의 은이 유럽과 교역으로 중국에 쏟아지면서 은화가 중국의 통용화폐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은항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은행'이란 단어로 읽히면서 정착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달력과 의자, 점포를 의미하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완전히 다른 세 단어가 모두 대부업이란 뿌리를 안고 있었던 셈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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