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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인듯, 남자 아닌, 남자 같은, 남장배우가 여심 흔드는 비밀

최종수정 2017.06.01 10:06 기사입력 2017.05.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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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카라즈카, 유럽의 트라베스티, 그리고 한국의 여성국극까지 세계를 주름잡은 원조 '걸크러쉬'


여성이 남장을 하고 연기를 펼친 역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공연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만큼 광범위하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내 여성 연기하는 남성의 이상적 모습에 설득당하고, 매료되며 우리가 갖고있는 젠더와 성역할에 대한 통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여성이 남장을 하고 연기를 펼친 역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공연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을만큼 광범위하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내 여성 연기하는 남성의 이상적 모습에 설득당하고, 매료되며 우리가 갖고있는 젠더와 성역할에 대한 통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오로지 남성을 위한, 남성만의 축제였다. 제우스 신 앞에 온전히 남성의 신체 우월성을 뽐내기 위한 자리로 치러진 올림픽은 철저하게 여성의 참여를 차단했는데, 참가선수는 오로지 나체로만 출전이 허용됐던 것이 그 증거. 이는 남장여자의 출전을 막기 위한 주최 측의 극단적 조치였다.

이처럼 성차별이 극심했던 고대, 중세를 지나 근대사회에 접어들며 여성에 대한 편견과 탄압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남장여자’는 성적 유희를 위한 분장으로 사교계 유행을 거쳐 공연문화에 등장하며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
다카라즈카는 꽃, 달, 눈, 별, 우주를 뜻하는 각 그룹과 베테랑 그룹인 전과 까지 6개 조로 운영되는데, 각 조의 남역 오토코야쿠는 해당 조의 톱스타로 공연의 주연을 맡으며 톱스타에 맞춰 공연의 각본이 작성될만큼 엄청난 파워를 자랑한다. 사진 = 다카라즈카 공식 홈페이지

다카라즈카는 꽃, 달, 눈, 별, 우주를 뜻하는 각 그룹과 베테랑 그룹인 전과 까지 6개 조로 운영되는데, 각 조의 남역 오토코야쿠는 해당 조의 톱스타로 공연의 주연을 맡으며 톱스타에 맞춰 공연의 각본이 작성될만큼 엄청난 파워를 자랑한다. 사진 = 다카라즈카 공식 홈페이지


만찢남의 강림? 여자 마음 흔드는 남장여배우 ‘오토코야쿠’

일본의 유서 깊은 가극단 ‘다카라즈카’는 소속배우 전원이 미혼 여성으로 남성 역할도 여성이 소화하는 명실상부 일본 최고의 여성가극단이다. 다카라즈카의 배우는 통칭 ‘다카라젠느’라고 부르며, 남자 역할을 맡는 ‘오토코야쿠’와 여자 역할을 맡는 ‘무스메야쿠’를 중심으로 스타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원 전원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출신이며, 2년의 재학기간 중 입학 때부터 남역을 맡을 학생을 구별해 성악, 발레, 일본무용 등 혹독한 수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남역을 맡은 오토코야쿠들은 남자보다 더 섬세하고 유려한 연기를 선보여 여성관객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톱스타 아마미 유키는 다카라즈카 오토코야쿠 시절 남자보다 더 멋진 꽃미남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며 최근까지도 일본에서 '여성이 뽑은 멋진 여자' 앙케이트에서 1위를 차지할만큼 탄탄한 인기를 자랑한다.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톱스타 아마미 유키는 다카라즈카 오토코야쿠 시절 남자보다 더 멋진 꽃미남 역할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며 최근까지도 일본에서 '여성이 뽑은 멋진 여자' 앙케이트에서 1위를 차지할만큼 탄탄한 인기를 자랑한다.


실제로 오토코야쿠 출신으로 퇴단(졸업) 후 연예계로 진출한 배우 중 아마미 유키, 스즈카제 마요, 마야 미키 같은 톱스타들은 탄탄한 연기실력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 연기도 무리 없이 펼쳐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을 정도.

가부키가 남성의 성역이고 남성이 여성 역할을 맡는 온나가타(女形)가 있다면, 다카라즈카는 여성의 성역이며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오토코야쿠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화려한 무대 속 이상적 남성상을 통해 여성 관객의 판타지를 철저하게 만족시켜주고 있다.


여성의 무대 출연을 금지한 교황령에 따라 전성기를 누렸던 카스트라토가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으로 양성이 금지되며 사라지자 그들이 맡은 배역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여성 메조소프라노 가수들에게 돌아가 다수의 '트라베스티 (바지역할)'를 양산했다. 사진은 모짜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수산나가 케르비노의 사랑노래를 듣는 장면으로 카스트라토의 역할이었던 케르비노를 여성 성악가가 연기하고 있다.

여성의 무대 출연을 금지한 교황령에 따라 전성기를 누렸던 카스트라토가 18세기 말 나폴레옹 전쟁으로 양성이 금지되며 사라지자 그들이 맡은 배역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여성 메조소프라노 가수들에게 돌아가 다수의 '트라베스티 (바지역할)'를 양산했다. 사진은 모짜르트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부인과 수산나가 케르비노의 사랑노래를 듣는 장면으로 카스트라토의 역할이었던 케르비노를 여성 성악가가 연기하고 있다.


카스트라토의 실종, 강인한 남성 표현한 ‘트라베스티’

여성의 교회 및 극장 공연을 금지한 교황령으로 인해 등장한 고음역대 남성 가수 카스트라토는 17~18세기를 풍미하며 오페라 무대를 장악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카스트라토 양성이 금지되며 차츰 쇠퇴해 무대 위에서 사라졌다.

문제는 이들의 음역에 최적화 돼 만들어진 오페라의 배역들. 작곡가와 지휘자는 급기야 메조소프라노나 알토 여자가수들에게 역할을 맡겨 공연을 이어나갔다. 남자 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 여성 가수들을 일컬어 당대 사람들은 가장하다, 모방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를 붙여 트라베스티(Travesti)라 칭했고, 관객들은 여자가 남자 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해서 ‘바지 역할’이라 불렀다.

오페라에서 트라베스티가 활약한 대표적 바지 역할로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케루비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글룩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의 오르페우스가 대표적이다. 현대에 와서는 여성이 대신하기보다 카스트라토와 유사한 음역대를 구사하는 카운터테너들이 그 역할을 주로 소화하고 있다.


해방 후 여성국극을 통해 등장한 남장 여배우는 당대 성역할에 억압받던 여성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금기를 깨트리며 남장배우의 존재 자체가 억압으로부터 일시적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기능했다. 사진 =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스틸컷

해방 후 여성국극을 통해 등장한 남장 여배우는 당대 성역할에 억압받던 여성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금기를 깨트리며 남장배우의 존재 자체가 억압으로부터 일시적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기능했다. 사진 =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 스틸컷


전쟁의 폐허 속 남자보다 더 강인했던 ‘여성국극’ 배우들

무당과 여사당패는 우리 역사 속 여성이 무대 전면에 등장한 사례로, 이후엔 기생의 전통연희를 통해 여성이 남성 역할까지 도맡아 하곤 했다. 해방 후인 1948년 결성된 여성국악동호회는 본격적으로 창극에 익숙한 여성배우가 남성역할까지 맡아 대중적 공연을 선보였는데,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도 여성국극을 선보인 임춘앵과 김주전 등 여성 국악인들의 활약은 남녀 간의 삼각관계, 속 시원한 권선징악을 멜로드라마로 풀어낸 레퍼토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춘향전’, ‘심청전’과 같은 고전 레퍼토리는 물론이고 ‘로미오와 줄리엣’,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번안한 무대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했던 사회적 관습에 대한 반항이자 젠더와 성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는 통쾌함을 여성관객들에게 선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1960년을 전후해 여성의 지위가 차츰 향상되면서 천편일률적인 여성국극의 스토리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게 됐고, 영화가 새로운 볼거리를 담아 부흥의 전초를 마련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쇠퇴해 오늘날에는 과거 국극의 주역들이 갖는 간헐적 공연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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