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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달빛은 검은 아이들을 푸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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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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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일요일 오전 조조영화를 보러 가자고 굳게 약속했던 큰아들과 거실에서 머쓱한 재회를 한 시각은 오전 11시. 이미 조조영화는 물 건너간 지 오래. 아쉬운 마음에 집에서라도 영화를 한 편 보자고 했다. 그렇게 고른 영화가 문라이트(Moonlight). 달님이라 불리는 문(Moon)재인 대통령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택인데 우연히도 시작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깔리기 시작한다. 반짝거리는 차가 빙빙 돌다가 기울어진 노변에 정차하는 첫 장면. 화면을 가득 메운 기울어진 푸른 차체가 강렬했다(혹시 기울어진 운동장?).

어쨌든 영화는 '파란'(헉! 또 민주당?)만장한 흑인소년의 성장기를 다룬다. 그 유명한 '라라랜드'를 제치고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영화다.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표시를 보고 별생각 없이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아들도 함께 봤는데(가만 초등학교 6학년이면 몇 살인고?) 해변을 배경으로 주인공 샤이론이 유일한 절친 케빈과 나란히 앉아 수음하는 장면이 나오자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큰아들이 눈을 흘기며 비아냥댄다. '아이고, 참 탁월한 선택이네요.' 막내아들과의 성정체성 토론은 나중으로 미루고 영화이야기를 시작하자.
고백하자면 영화 포스터에 나온 등장인물의 풍채를 보고 권투를 주제로 한 스포츠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는 스포츠 장면이 딱 세 번 밖에 없다. 첫 번째는 럭비를 빙자한 아이들의 격구 장면. 여러 명이 뭉쳐 있다가 한 아이가 공(이라기보다 신문지를 뭉쳐 놓은 정체불명의 물체)을 들고 냅다 뛰는 걸로 보아 럭비에 가까웠다. 격렬함은 럭비와 닮았으나 지향점은 럭비와 전혀 달랐다. 폭력의 과시와 지배, 그리고 배재로 가득하다. 심지어 왜소한 체구 탓에 '리틀'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경기 중 슬쩍 무리에서 벗어나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스포츠는 연합과 우애가 아닌 지배와 배재의 스포츠다.

두 번째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마약상이 된 주인공이 이를 악물고 팔굽혀 펴기를 하는 장면이다. 가냘픈 예전의 몸을 부정하듯 건장한 몸에 조각 같은 식스팩을 장착했다.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시작한 샤이론은 몸의 극적인 변화를 통해 삶을 바꾼다(혹은 바꾸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그의 몸부림은 건강한 자기개발이 아닌 강박과 자폐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상대방에게 강하게 보여야 하니 몸을 키우고 근육을 부풀려야 하는 것이다. 강인해 보이는 육체를 갖춘 그는 이제 총을 들고 다녀야 한다. 더구나 자기보다 약한 이들을 장난삼아 위협하기도 한다. 욕망으로 부풀린 몸의 비뚤어진 부작용인 셈이다.

세 번째 스포츠 장면은 수영이다. 수영을 배워본 적 없는 샤이론이 아버지 역할을 해주는 후안을 따라 바다로 들어간다. 허둥대는 샤이론을 두 손으로 받쳐 진정시킨 후안은 차분하게 '네가 세상의 중심'인양 상상해보라고 주문한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서서 세상을 감지해내는 어린 소년의 검은 몸이 눈부셨다. 비록 후안이 가르쳐 준 수영은 얼굴을 쳐들고 팔을 좌우로 젖는 일명 해병대 수영이지만 새로운 생존기술을 배운 샤이론은 더 이상 바다를, 광대한 푸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의 두 장면이 스포츠의 비틀린(그러나 불행히도 너무 흔한) 예를 보여준 반면 마지막 장면은 스포츠를 통해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정수를 보여준다. 홀로 세상과 맞설 힘을 얻은 샤이론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기 시작한다.

영화에는 '달빛은 검은 아이들을 푸르게 만든다'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도 나온다. 국정지지도 90%에 육박하는 문 대통령이 지난 9년간 까맣게 타들어간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푸른 희망을 꿈꾸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설마 아니겠지.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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