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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주 버텨야 얻는다 ‘해병대 빨간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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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주 버텨야 얻는다 ‘해병대 빨간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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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해병대는 1959년부터 일반 병사들에 대해 전원 지원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해병대 지원경쟁률은 치열하다. 1990년대 후반에는 경쟁률이 24대 1까지 올랐다. 2010년 연평도 포격도발이 발생했지만 그해 12월 경쟁률은 3.57 대 1에 달해 전년도 같은 달(2.1 대 1)에 비해 높았다. 정부는 최근 현역병 입영 정원을 예정보다 크게 늘렸지만 지난해까지 7대 1을 유지했다.


해병대를 지원하는 장병들은 높은 경쟁률에 대해 "해병대만의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병대 장병들의 자부심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신병교육대대를 찾았다.


새벽 3시 30분. 어둠이 짙게 깔린 신병교육대는 그야말로 암흑세상이었다. 신병교육대대 건물 안에 들어가자 계급장 없이 노란명찰만 달고 있는 장병이 마중을 나왔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훈련병이었다. 건물 1층에 들어가자 군 관계자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해병대 훈련병들의 극기주에 오신 걸 환영한다"며 "수면시간은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식사는 하루 3200kcal에서 1500kcal로 절반을 줄여 10명중 1명은 낙오를 한다"며 은근히 겁을 줬다.


새벽 4시가 되자 정적을 깨우는 사이렌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교관들은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훈련병들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훈련병들은 기상 10분 만에 침낭을 정리하고 내무반에 일렬로 도열해 점호를 시작했다. 교관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지자 훈련병들은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갔다. 교관의 "연병장 집합"지시가 떨어지자 마자 훈련병들은 연병장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자도 따라 나섰다.


어두운 연병장는 8M 길이의 목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반신 속옷을 벗어던지자 새벽 찬바람이 살을 베는듯했다. 145Kg에 이르는 목봉은 7명의 장병들이 들기에 버겁기만 했다. 목봉체조 10분 만에 팔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조교는 목봉을 위로 올리게 한 뒤 '팔각모 사나이' 등 군가를 시켰다. 끊어지지 않고 나오는 군가는 팔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목봉체조가 끝나자 구보가 이어졌다. 구보를 하는 동안 해가 뜨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아침이 밝아왔지만 몸은 이미 녹초가 됐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간 식당에도 훈련병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군기가 가득했다. 아침부터 힘든 훈련을 치룬 탓에 맛있는 식사를 기대했지만 곧 실망했다. 밥은 손바닥 반도 되지 않았고 김치도 3~4조각이 전부였다.


극기주 버텨야 얻는다 ‘해병대 빨간명찰’ 원본보기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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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훈련병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입대 전에 하기 싫은 어려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만 늘어난 나 자신을 바꾸고 싶어 지원했다"며 "해병대에 먼저 입대한 친구들의 권유로 지원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간 연병장에는 20kg가 넘는 완전군장이 기자를 맞이했다.


군장을 둘러매니 어깨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행군이 시작되고 훈련대대를 빠져나와 산속을 진입했다 40대를 훌쩍 넘긴 기자는 행군 10분 만에 땀을 비 오듯이 쏟아냈다. 숨도 거칠어져 숨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였다. 행군을 시작할 때는 소대 맨 선두에 자리를 잡았지만 행군 30분 만에 마지막 소대까지 밀리고 말았다. 산속 오르막길을 오를 때면 종아리에 고통이 밀려왔다. 결국 기자는 행군 1시간 만에 낙오하고 말았다.


차에 실려 찾아간 유격장에는 이미 일부 훈련병들이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조교는 완전군장을 내리고 유격을 위한 복장으로 집합을 시켰다. 아침에 서늘했던 바람은 없고 기온은 20도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햇볕은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했다.


유격장에 들어서자 30m가 넘는 레펠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레페타워에는 빨간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로 '호국충성 해병대'가 써져 있었다. 잔뜩 긴장된 기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유격이 시작되자 온몸이 긴장감에 휩싸이며 다리까지 풀려왔다. 어깨에 멘 소총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훈련병들이 차례 자세에서 조금씩 움직이자 교관의 날카로운 호통이 이어졌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50회 마치자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명령이 끝없이 이어졌다. 온몸은 금세 누런 흙먼지로 뒤덮여 훈련병들의 얼굴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입안에 모래알이 씹히고 땀과 함께 흐르는 먼지가 눈으로 흘러들어가 기자를 더 괴롭혔다. 유격체조 2시간이 지나자 체조 15개동작의 마지막 단계를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일어날 힘도 없었다.


훈련을 마치고 신병교육대대를 빠져나오는 길에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병들은 극기주를 버티고 나면 해병대 고유의 빨간 명찰을 받게 된다. 비록 짧은 체험이었지만 빨간 명찰이 주는 해병대만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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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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