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매출 급감하는데 매달 수천만원 월세에 '백기'
"명동 임대료 현실화·상권 재편 계기로 삼아야"
서울 중구 명동에 폐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25일 메인 거리를 중심으로 이면도로마다 두세 곳씩 빈 건물이 눈에 띈다. 새 임차인을 찾는 빌딩 대부분은 내외부 인테리어가 채 낡지도 않았다. 인근 상인들은 중국인 관광객 수요로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던 명동 상권이 활기를 잃었다고 입을 모은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임대문의, 010-××××-××××.'
서울 중구 명동 유네스코 길에서부터 전국 최고 땅값을 자랑하는 명동역 인근 네이처리퍼블릭 매장까지. 두 시간 가까이 골목 구석구석을 걷는 동안 수십여 개의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작은 상점들은 폐점 후 새로운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다. 인테리어가 아직까지 반짝거리는 곳도 적지 않다. 가게 문을 연 지 얼마되지 않아 짐을 쌌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쇼핑 1번지'로 통하던 명동이 문을 닫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연중 북적이며 '소(小) 중국'으로까지 불리던 명동은 한반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ㆍ사드) 배치 이후 양국관계가 냉각되며 활기를 잃었다. 특히 두 달 전 롯데그룹이 사드 부지 제공 계약을 체결한 이후 중국 정부의 방한금지령 등 보복성 조치가 본격화하고, 최근에는 '전쟁설'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부각되며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쏟아지는 요우커 수요에 의존해 이들의 취향에 맞춘 브랜드, 품목을 집중적으로 들여오던 대부분의 상점들은 임대료를 내지 못해 내쫓기듯 문을 닫고 있다.
25일 한국감정원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11.2%로 조사 이래 최고점을 찍고 3분기 8.0%, 4분기 5.1%로 하락세를 보여왔던 명동 지역 중대형상가 공실률이 올해 1분기 다시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드 여파로 명동 내 점포들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임대료를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기자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확인한 100평 이상 대형 매장은 보증금이 3억원대, 월세는 2000만원 수준. 5평 남짓한 작은 상가도 보증금이 1억원대, 월세는 950만원에 달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상점들이 이제는 임대료, 인건비를 소화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대부분이 한계치에 달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동에서 가방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명동에서 유명한 길쭉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몇개월 전에 새로 매장을 열었다가 장사도 얼마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을 닫았다"면서 "그 골목 1층에만 네다섯 곳이 비어있고, 5층까지 건물 하나가 모두 통째로 비어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상인은 "이 일대 임대료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도 "그래도 이제까지는 차떼고 포떼고 나서도 남아 너도나도 가게를 차렸는데 이제는 하루하루 적자를 보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옷가게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동남아나 유럽 관광객이 가끔 단체로 올 때도 있는데 대부분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서 "근처 상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곧 문을 닫게 생겼다고 얘기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약기간이 있고, 대기업 계열 임차인이 많아 단기간에 명동 상가가 텅 비어 버리는 일은 없겠지만 이번 상황을 계기로 명동 일대의 임대료가 현실화되고 천편일률적으로 중국인에 의존하던 상권도 재편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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