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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벤처하지 않는 벤처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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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김동하 한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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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갑’ VC문턱에서 멍 드는 청년들

창업과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은 올해도 풍년이다. 정부 정책, 정치인들의 공약, 세금을 재원으로 한 대규모 출자사업, 어른들의 걱정까지. 청년창업자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들은 곳곳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학, 지방자치단체 역시 창업활성화 사업을 늘리고 있지만 가장 규모가 큰 건 벤처캐피탈을 통한 중앙정부의 출자사업이다. 중소기업청, 문화체육관광부, 특허청, 미래창조과학부, 농림축산부에 이어 올해는 교육부와 환경부도 가세했다. 지난해 약3조원 규모의 신규 벤처펀드가 결성됐는데 이중 정책성 출자금, 즉 세금을 기반으로 뿌려진 돈이 1조1810억원으로 거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나 창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창업과 투자환경도 풍년일까. 글쎄. 소수의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사업이나 투자유치의 성공사례들은 현저히 줄었다. 여기저기에서 창업은 부추기지만 투자받을 곳은 찾기 어렵고, 상대적 박탈감만 깊어가는 푸념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신규 벤처펀드 규모는 17.9%늘었는데, 신규투자는 3.1%늘어나는데 그쳤다고 한다. 그 많은 펀드와 투자조합들의 돈은 누가 다 받아가는 걸까.

벤처(Venture)의 사전적 의미는 (사업상의)모험, (위험을 무릅쓰고?모험하듯) 가다. (도박하듯 귀중한 것을 ~에) 걸다 등이 있다. venture-capital은 이처럼 모험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 즉 은행권에서 융자를 받지 못하는 기업의 미래 수익성에 과감히 투자하는 자본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벤처캐피탈의 투자행태에서 벤처정신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투자 규모부터 어느 정도 검증된 기업을 선호하고, 스펙, 인력, 브랜드, 기술, 비즈니스모델 모두 생각보다 요구수준이 높다. 투자계약서만 봐도 대부분 자본차익과 배당 우선권 등 주식(Equity)투자의 업사이드는 보유하면서도 유한책임, 경영권 제한, 보험(담보)의 성격을 띤 특약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많은 청년창업자들의 바람과 달리, 벤처캐피탈이 주로 투자하는 규모는 10억~30억원 규모다. 적어도 5억원, 최소 3억원 이상은 돼야 VC가 투자 프로세스를 진행할 ‘대상’이 된다. 벤처캐피탈은 지배주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투자기업의 가치가 적어도 10억원은 돼야 검토할 ‘깜’이 되고, 선호하는 투자대상이 되려면 기업가치가 100억원 정도는 돼야한다는 얘기다. 툭 터놓고, ‘청년’이 ‘창업’한 ‘젊은’ 기업 중에 그럴 대상이 얼마나 있겠는가?

VC가 모험투자보다는 안정적인 대상을 선호한다는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벤처캐피탈이 가장 선호하는 펀드는 상장(IPO)을 앞둔 기업에 투자하는 프리(pre)IPO펀드다. 수익률도 출자사업의 경쟁률도 가장 높은 편이다. 영화부문을 예로 들면 대부분의 콘텐츠펀드들이 제작과 투자가 다 끝난 후 마지막 홍보비 단계에서 투자를 진행한다. 심지어 영화의 초기 ‘기획개발’이 목적인 펀드의 경우에도 실제론 투자배급 계약이 됐는지, 감독과 캐스팅은 확정됐는지를 확인한 후 투자하는 일이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창업초기’나 ‘청년창업’의 이름을 내 건 펀드도 많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최소 투자비율만 채우면 그 이상은 초기단계 투자를 꺼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올해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출자하는 신규영역인 'NEW콘텐츠'와 '관광산업육성' 등 분야는 지원사가 단 1곳이거나 아예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VC들은 모험투자를 꺼릴까. 과거와 달리 VC업계는 자기자본 투자에 의한 모험투자보다는 연간 펀드총액의 3%전후에 달하는 수수료 수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대상만 ‘벤처기업’위주일 뿐, 단기 수익률을 관리하면서 수수료와 보수를 추구하는 경향은 투신운용이나 자산운용업계를 닮아가고 있다.

출자사업의 선정기준이 단위기간 수익률, 즉 ‘트랙레코드’를 중시하다보니, 전문성보다는 일단 수익률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따고 보자’는 경향이 짙다. 변동성을 줄이고 수익률을 관리하기 위해 신규기업을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회사들에 대한 추가 투자로 밸류를 높이는 일에 몰두하기 쉽다. 숙박, O2O, 배달, 세탁, 게임 등 투자의 ‘유행’으로 돈이 몰리는 일은 다반사고, 배달의 민족, 쿠팡, 미미박스, 직방처럼 그나마 TV광고 등을 통해 알려진 기업들만 추가투자를 받고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창업과 투자활성화를 외치지만 자본시장에서 VC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장 큰 문제는 투자를 받고자 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얼마나 멍들어가고 있는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데 있어 보인다.

정부는 벤처캐피탈을 통해 청년들에게 창업과 성장의 사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벤처캐피탈들은 정작 사다리가 없으면 못 올라갈 청년들을 제외하고, 사다리 없이도 올라갈 청년들만 골라 ‘사다리 값’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실제 창업해서 VC돈을 받아본 청년들이나, 받는데 실패한 청년들 모두 VC의 행태에 혀를 내두르는 이유는 뭘까.

◆ IR, 투명성은 VC의 프로세스부터 강화해야

‘청년창업 펀드는 많은데,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융합콘텐츠 펀드인데 우리 회사는 왜 해당이 안 되는 거죠?’

필자는 수년간의 경력과 현업과의 연관성 탓에 늘 창업기업의 투자문의를 많이 받는다. 잘 아시는 벤처캐피탈이 있으면 소개를 좀 해달라는 요청으로 정말 많은 지인들과 접촉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확실한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 아니면 벤처캐피탈은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마 투자유치를 해 본 창업기업이거나, 투자유치에 실패해본 수많은 창업기업이거나 생각은 비슷할 것이다.

먼저 수많은 벤처펀드들의 이름과 성격부터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융합콘텐츠펀드’라고 하면, 어지간한 IT나 콘텐츠 회사는 대상이 될 것 같다. 사전적 정의와 사람들이 인식하는 인식수준과 벤처캐피탈이 투자할 대상에는 실제로 많은 격차가 있다는 얘기다. 그 펀드의 출자기관이 정부의 어떤 부처인지, 그 부처의 가이드라인이 어떤 지에 따라 철저하게 정해진 목적으로 운영되지만, 이름과 언론기사만 봐서는 성격을 알기 힘들다. 업계에 있었던 필자조차 모르는데 창업한 청년들이 어떻게 알까. 정작 벤처캐피탈에서는 내려온 출자기관의 속내를 공개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최근엔 트랙레코드가 좋은 IT분야 벤처캐피탈들이 콘텐츠분야로 확산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전해들은 업계 담당자들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콘텐츠의 작품도 생태계도 사람들도 모르는, 말하자면 자본이 어떻게 콘텐츠가 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콘텐츠펀드를 ‘따고 본다’는 것, 세금을 털어 콘텐츠 생태계를 지원하는 일에 있어서 이해관계는 공공기관과 벤처캐피탈이 따질 뿐, 납세자와 청년창업자들의 거리는 요원해 보인다.

벤처캐피탈은 원하던 원치 않던 늘 ‘갑’의 위치에 놓인다. 투자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 보다는 투자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현저히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검토 과정에서 창업자들은 VC들에게 기업의 거의 모든 정보를 다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가는 문서에 ‘Strictly confidential’이라고 쓰면 무슨 소용인가. 창업자와 회사의 모든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을 자료화해 받아간 뒤 연락을 끊어도 창업자들은 뭐라 항변할 수가 없다. 투자 검토기간과 프로세스의 ‘갑질’은 오죽한가. 담당 심사역 입장에선 투자 ‘건수’를 늘리기 위해 대상을 ‘킵’해놓으려는 성향이 강하고, 몇 주 또는 몇 달간 사내 투심, 외부 투심을 통과하는 일은 오롯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언제까지 심사가 진행되고, 언제 결과가 발표되고, 또 돈은 언제 지급될지 투명하게 전달받은 청년창업자들이 과연 있기는 할까.

일부 벤처캐피탈들은 마치 TV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재밌게 IR행사를 열면서 친화적으로 투자대상을 선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 IR과 투명성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건 청년창업기업이 아니라 벤처캐피탈 자신들이다.

투자현황이 공시되고, 언론도 보도하고 있지만 대부분 펀드 결성이나 투자결과에만 주목할 뿐, 가장 중요한 투자의 ‘과정’은 벤처캐피탈(생태계의) 사각지대에 있다.

과거 정부처럼 세금을 주무르면서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들에게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 걸러내고 탈락시키고 할 문제가 아니다. 세금이 녹아든 재원을 위탁운용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청년창업자들을 물색하고, 자신들이 어떤 회사인지, 펀드는 어떤 성격을 띠고, 투자 프로세스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IR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지금도 대선주자나 고위 공직자들, 대기업 경영자 등 곳곳에서 ‘청년창업 활성화’를 국가적 과제로 거론한다. 이 땅의 청년창업자들이 투자를 받기 위한 페이퍼워크가 얼마나 고달픈지, 투자할지 안할지 몇 달간 결과 통보 한 번 못 받은 청년들의 지옥 같은 시간을, 멍든 가슴을 그분들이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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