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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요일에 푸는 해장傳]해장보다는 해갈의 명물이었던 추탕

최종수정 2017.04.19 11:28 기사입력 2017.04.19 11:28

답답한 속 풀어주는 해장 음식을 찾아서…(3)추탕

바야흐로 해장의 시대다. 저간에 벌어지는 일들, 신문 지면을 장식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죄다 서민들 맺히게 하는 것들뿐이니 그저 시원한 해장국 한 그릇이 절실하다. 해장국의 원래 이름은 숙취를 풀어준다는 해정(解酊)국이었지만 이제는 답답한 속을 풀어준다는 해장(解腸)국으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쓰린 배 부여잡고 아무 데서나 해장을 할 수는 없다. 정성껏 끓인 해장국 한 그릇은 지친 삶을 견디기 위한 한 잔 술 다음에 놓인다. 고단한 일상에 위안이자 어쩌면 유일한 호사다. 허투루 이 한 그릇을 대할 수 없는 이유다. 해장의 시대, 삶의 무게 깃들어 땀내 서린 해장 음식을 찾아 나섰다.

용금옥의 추탕

◆추탕, 해장보다는 해갈 =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술로 명성을 떨쳤던 시인 수주 변영로는 자신의 음주 기행을 담은 '명정 40년'에 이렇게 썼다. "유명한 해정(解酊) 주점이 화동에 있었는데 일컫기를 황보 추탕집이라 하였다. 그 당시 황보 추탕이라 하면 간이주점의 별칭이고 해정 술집의 대용어나 상징어가 될 만한 정도의 명물 집이었다. 우리는 거시내시(去時來時) 심심하면 들러서 해정보다는 차라리 해갈을 한 바…" 그러면서 변영로는 이 황보 추탕집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상되는 인물이 한글학자이며 역사학자였던 애류 권덕규라고 소개했다. 그 시절 수주와 애류는 해장을 위해 추탕을 먹으로 갔다가 또 그 국물에 술을 마시고 그랬던 모양이다. 추탕은 서울식 추어탕을 말한다. 요즘 흔히 먹는 남원식이나 원주식과는 다르다. 수주와 애류가 해장을 위해 찾았다 해갈을 했던 그 추탕은 어떤 맛일까.

변영로가 '명정 40년'에서 언급한 황보 추탕집은 당시 경기중학교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화동에 있던 경기중학교 건물은 지금의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 인근에서 그 황보 추탕집은 이미 찾을 수 없다. 변영로는 이 집을 소개하며 16~17세 되는 그 집 아들이 부친의 술장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썼는데 아마도 대물림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따름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1930년대 서울에는 명성 높은 추탕집이 세 곳 더 있었는데 바로 형제추탕, 곰보추탕, 용금옥이다.

우선 형제추탕은 1920년대 말 선산 김씨 다섯 형제들이 동대문 밖 신설동 경마장 옆에 문을 연 집이었다. 처음에는 이름 없이 막걸리와 추탕을 팔았는데 주위에서 형제추탕집이라고 부르자 1930년대 '유명추탕 형제주점'이라는 간판을 달게 됐다고 한다. 형제추탕은 196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가 형제 중 막내가 사라져가는 추탕을 계승하기 위해 1980년대 말 문을 다시 열었고 지금은 평창동으로 이전해 형제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곰보추탕은 형제추탕에서 일하던 정부봉씨가 1930년대 초 독립해서 낸 가게인데 역시 처음에는 간판 없이 추탕을 팔았다. 주인의 얼굴 때문에 손님들이 '곰보추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집은 안암교 근처에서 80년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최근 문을 닫았다.
◆현대사의 고단한 역사를 안고 있는 한 그릇 = 용금옥은 1932년 개업해 지금도 서울 한복판 다동에서 성업 중이다. 올해로 85년의 역사다. 이 세월 동안 서울식 추탕만을 고집하고 있다. 황보 추탕집에서 해장을 하다 해갈을 하던 변영로도 용금옥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요리사 박찬일은 노포 기행을 엮은 '백년식당'이라는 책에서 이 집에 대해 이렇게 썼다. "현대사의 고단한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집이다. 이곳이 식당은 밥 먹는 집이라는 전통적 통념과 달리 현대사에서 늘 거론되는 건 이유가 있다. 해방 전부터 민족 지사와 문사,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고, 해방 후에는 야당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 회담에서 북측 인사가 이 식당의 안부를 물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소개돼 있다. "그곳의 맛은 여전합니까?"라고 물었을까. 아마도 북한에서는 이 추탕의 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식으로 끓인 추어탕, 추탕은 뭘까. 소고기로 육수를 내 얼큰하게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유부, 두부, 버섯 등도 함께 넣어 맛을 더한 것이 추탕이다. 추어는 통째로 넣는다. 추어탕은 1950년대만 해도 이렇게 끓이는 서울식이 주류였다고 한다.

◆해장국이면서 안주 = 용금옥의 추탕은 육개장과 비슷한 대중적인 맛이다. 유부는 국물과 잘 어울리고 두부, 버섯 등 여느 추어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건더기들도 한 그릇의 추탕 맛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통째 가라앉아 있던 추어는 큼직하다. 10㎝는 돼 보이는 크기의 추어가 꽤 여러 마리 들어 존재를 뽐낸다. 동의보감에 추어는 "맛은 달고 성질이 따뜻할 뿐 아니라 독이 없어 비위의 기능을 보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소개돼 있다.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에도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양기에도 좋다"고 언급돼 있다. 추탕이 해장국인 이유다.

동시에 안주인 이유는 맛에서 찾는다. 추어의 살은 국물을 머금고 있지만 담백하고 뼈는 고소하게 씹힌다. 추탕 한 그릇에 고단한 역사도 담겼지만 다양한 맛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소고기 육수의 시원함과 미꾸라지의 고소함, 얼큰한 국물을 머금은 국수, 제피가루의 매콤하고 톡 쏘는 향까지. 수주가 소개한 것처럼 서울식 추탕은 술을 부르는 맛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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