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발간…단편 5편·산문 1편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상처받고 약한 것들, 어린 것들에 대한 지지와 연민은 제가 소설을 쓴 서른 해를 관통한 주제입니다. 문학이 가지는 여러 역할 중 치유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믿는데, 제 자신이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54)이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해냄)'를 펴냈다. 단편 소설집을 발표한 것은 독일 베를린을 무대로 한 이야기들을 연작 형태로 묶은 '별들의 들판' 이후 13년 만이다. 단편 5편과 짧은 산문 1편이 실렸다. 2000~2010년 사이 쓰고 발표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21세기문학상)', '부활 무렵(한국소설문학상)', '맨발로 글목을 돌다(이상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 수상작과 '월춘 장구',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최근 새로 쓴 '후기, 혹은 구름 저 넘어' 등이다.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곧 숨이 끊어질 듯한 할머니가 끈질기게 생명을 연장하면서 가족과 반려동물들이 차례로 죽는 기괴한 이야기다. 공지영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사회의 기득권, 즉 죽지도 않는 강한 것들이 약한 것들을 섭취하는 현실을 목격한다"면서 "자기의 화석화된 생명을 유지하는 강한 존재의 측면을 들여다본 것"이라고 해설했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각자의 고통을 교차시키며 공감, 나아가 연대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자기의 내면, 즉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보듬는 일을 시작으로 타인의 고통을 향해 손을 내민다. 실제 각 작품에는 주인공이 공지영이라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등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다. 이에 대해 공지영은 "작가의 주관적 측면을 작품에 담는 것은 보편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고 했다.
작가는 국정농단 의혹부터 박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진 최근 국내 정치 흐름에 대해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얘기를 젊은 세대들이 처음으로 실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위안과 치유를 해주는 문학적 기능도 필요하다"면서 "수많은 아픔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이 책을 내는 데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트위터 팔로워 수가 현재 100만명이 넘는다. 작가는 그간 SNS에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솔직하게 해왔고 그로 인해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 달쯤 전부터는 SNS에 글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정치적 의견을 내는 건 시민의 권리이자 작가의 사명"이라도 했다.
공지영은 현재 장편소설 '해리'를 집필 중이며 이르면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이다. 해리는 주인공 이름이자,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과 분리된 느낌을 경험하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뜻한다. 그는 이 소설에서 악을 정면으로 다룬다고 했다.
공지영은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88년 '창작과 비평'에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89년 첫 장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시작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 '고등어(1994)' 등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착한 여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과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별들의 들판',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이 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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