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이제 탄핵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바뀌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우리사회를 지배해왔던 '한국식 민주주의', '한국식 경제운영'이라는 변칙적 방식을 정상화하여 법적 절차가 아닌 정치,경제적 힘의 유무로 정의가 결정되던 적폐를 바로잡아 가야 할 것입니다.
해방직후 제헌 국회내에 구성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강제해산되면서 일제 36년간의 친일부역행위에 대해 단죄하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그대로 정치ㆍ경제ㆍ문화 심지어 교육부분에까지 국가의 중심세력으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민간차원에서는 (사)민족문제연구소에서 15년의 전문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009년 11월 총 4389명에 이르는 친일파를 정리분석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였고, 국가차원에서는 2004년 3월 공포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총 1005명으로 압축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정하게 됩니다. 물론 이 또한 형사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남기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에 단죄가 되었다고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정함에 있어서 특정 유력자를 제외하기 위하여 기준을 높여서 정하였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어 왔고, 조사기간이 짧아 전국단위의 친일행위자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루어졌을뿐 지역에서 활동하던 친일행위자는 명단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기에 일제 36년간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1005명으로 최종확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제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생각해보면 1005명은 정말 최소한의 숫자입니다. 그럼에도 이 중 19명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고 독립운동가로 존중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이 밝혀졌고, 국무회의의 의결을 통하여 서훈이 박탈되었습니다. 이중 10명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었습니다. 서훈취소자의 경우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이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 또한 강제규정이 아닌 유족의 동의하에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어 아직도 이장이 전부 완료되지 않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경환 선생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묻혀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슬픈 말씀이 여전히 이 사회에 지속되고 있습니다.
김광진 전 의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