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던 시절, 등장한 스테로이드 약…당뇨 부르는 위험한 약이었지만, '자장면 7그릇 값' 비싸서ㅜㅜ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먹을 것이 귀한 시절 통통한 몸매는 그 자체로 부의 상징이었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의 상흔을 거치고도 유지된 육중한 몸매라면, 분명 끼니를 걸러본 적 없는 재력의 소유자였을 거란 추측 또는 상상력은 체중 = 재력 이란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이런 사회적 붐에 주목한 제약회사들은 발 빠르게 '살찌는 약'을 수입, 판촉에 열을 올리며 그런 열풍에 불을 붙였다.
▲ 1973년 방영된 살찌는 약 '베스타나볼' 광고 영상
살쪄야 호감과 신뢰 얻는다
요즘에야 가늘고 날씬한 허리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에 매진하는 청춘남녀를 쉽게 볼 수 있지만, 60년대엔 모두가 마르고 가늘었기에 통통한 사람이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전후 복구와 산업화의 기로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배불리 먹는 일 자체가 사치였기에, 살찐 몸매는 곧 여유로운 삶의 상징이 됐다.
"이 사회에서는 살찌는 것 자체가 용서가 안 돼요" 살 빼는 약 광고가 가혹한 문구를 쏟아내는 요즘과 정반대의 '살찌는 약'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원본보기 아이콘너도나도 찾는 '살찌는 약'의 실체
1960년대 대한민국은 하루 세끼를 먹는 일이 사치로 느껴질만큼 빈곤과 가난이 일상인 시대였다. 1963년 정부통계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생의 25%가 영양실조 상태로 점심 도시락이 없어 물로 빈 속을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진 = 미국 종군 사진작가 오브라이언 촬영
원본보기 아이콘비싼 가격, 결국 부유층을 위한 약
68년 광고 속 베스타나볼의 가격은 30정에 약 370원.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이 50원이었으니 꽤 비싼 약이었던 셈인데, 당시 졸업식이나 생일에나 먹는 '특식'이 자장면이었음을 생각하면 일반인에게는 뚱뚱한 몸매에 앞서 살찌는 약조차 그림의 떡이었다.
50년 전엔 살찌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살찌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회가 됐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흑사병과 전쟁으로 얼룩진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가 도래하자 새롭게 정의된 미의 기준에 대해 "크고 당당한 몸매, 부풀어 오른 큰 유방, 통통한 허리, 포동포동한 엉덩이, 거칠게 달라붙어 거인을 탈진시킬 수 있을 정도의 포동포동한 팔과 튼튼한 허벅다리가 이상적"이라 설명한 바 있다. 시대와 문화의 기준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요즘, 언제쯤 다시 살찌는 몸매가 유행하는 시대가 올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일까.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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