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오늘 그사람]CEO레전드 된 헝가리 난민, 잡스도 멘토로 꼽았던 그로브

최종수정 2017.03.22 10:45 기사입력 2017.03.21 11:26

지난해 3월21일 세상 떠난 前 인텔CEO의 인간 승리

앤디 그로브

1956년 10월,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공산 독재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나우 강변의 바므 광장에 모여 반정부 집회를 연 것이다. 시민들은 공산당의 상징인 붉은 별을 떼어 냈고 곳곳에 세워진 스탈린의 동상은 파괴됐다. 정부는 시민들의 뜨거운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소련은 11월 군사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다시 친소 정권을 세웠다. 그렇게 헝가리의 10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실패를 뒤로 하고 많은 이들이 망명을 선택해야 했다.

그도 그 선택을 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스무 살이었지만 너무 많은 고난을 겪은 뒤였다. 배를 타고 처음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무일푼이었고 영어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스무 살의 헝가리 청년은 30년 뒤 세계 IT 업계의 지형을 바꾼 CEO가 됐다. 그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인텔을 30년 넘게 이끈 전설적인 CEO 앤디 그로브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그로브가 겪었던 것은 10월 혁명의 실패만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다녀야 했다. 그는 불행했지만 이 시기의 경험이 그를 성장시켰다고 여겼다. 그로브의 책 '위대한 수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수많은 정치적 변화를 겪어야 했다. 파시스트 독재, 독일군 점령, 나치의 유대인 학살, 소비에트 연방군의 부다페스트 공격,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몇 년 간의 혼란스런 민주제 기간, 억압적인 공산정권, 총탄에 쓰러진 민중봉기…"

전투적이고 변덕스럽다는 평가를 받은 그의 성격은 이 같은 유년시절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뉴욕에 정착한 그는 허드렛일을 하며 대학을 다녔다. 뉴욕시립대를 다니며 엔지니어링을 배운 그는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가 IT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실리콘밸리의 페어차일드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하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서 개발을 담당했다. 기회는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를 만나면서 찾아왔다. 그는 인텔의 세 번째 직원이 됐다.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인텔의 사세도 나날이 커졌고 그로브는 1979년 사장에 올랐다. 1987년부터는 CEO로 회사를 이끌었다. 그로브는 1980년대 인텔의 성공을 이끈 결정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의 주력 사업을 메모리칩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한 것이다. 이 판단은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과 맞물려 인텔을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로브의 재임 기간 인텔의 매출은 19억달러에서 260억달러 규모로 증가했다고 한다. 2000년 CEO에서 물러난 이후 2005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주저 없이 그를 멘토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을 늘 경계했다. 저서 '승자의 법칙'에 그는 "성공은 자만을 낳고, 자만은 실패를 낳는다"고 썼다.
무일푼의 난민에서 세계적 IT 기업의 전설적인 CEO가 됐던 그로브는 지난해 3월2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오랜 기간 파킨슨병과 전립선암을 앓아왔었고, 파킨슨병 연구에는 3000만달러 이상을 기부했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오늘 본 뉴스

아시아경제 추천뉴스

리빙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