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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어깨너머라는 말은 / 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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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아무 힘 들이지 않고 문질러 보는 어깨너머라는 말
 누구도 쫓아내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아주 넓은 말
 매달리지도 붙들지도 않고 그저 끔벅끔벅 앉아 있다
 훌훌 날아가도 누구 하나 모르는 깃털 같은 말
 먼먼 구름의 어깨너머 달마냥 은근한 말
 어깨너머라는 말은 얼마나 은은한가
 봄이 흰 눈썹으로 벚나무 어깨에 앉아 있는 말
 유모차를 보드랍게 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저승에 내려놓는 노인 걸음만치 느린 말
 앞선 개울물 어깨너머 뒤따라 흐르는 물결의 말
 풀들이 바람 따라 서로 어깨너머 춤추듯
 편하게 섬기다 때로 하품처럼 떠나면 그뿐인 말
 들이닥칠 일도 매섭게 마주칠 일도 없이
 어깨너머는 그저 다가가 천천히 익히는 말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닮아 가는 말
 다르지 않아도 마음결에 먼저 빚어지는 말
 세상일이 다 어깨를 물려주고 받아들이는 일 아닌가
 산이 산의 어깨너머로 새 한 마리 넘겨주듯
 꽃이 꽃에게 제자리 내어주듯
 등 내어주고 서로에게 금 긋지 않는 말
 여기가 저기에게 뿌리내리는 말
 이곳이 저곳에 내려앉는 가벼운 새의 말
 또박또박 내리는 여름 빗방울에게 어깨 내어주듯
 얼마나 글썽이는 말인가 어깨너머라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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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진한 시다. "어깨너머"라는 말이 이미 그렇기도 하지만, 그 말을 두고 이처럼 정성을 다해 이룬 시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다만 읽고 다시 읽기를 권할 뿐이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도 시 하나 쓰고 싶었었다. 제목은 '끌어안다라는 말'로 하고, 시의 어딘가에 '끌어안는다는 말 당신의 어깨너머로 당신이 걸어온 길을 내처 바라본다는 말 내 서늘한 등 뒤를 당신에게 온통 맡긴다는 말' 이런 구절을 적어 넣은 시 말이다.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시를 읽고 나도 시를 쓰고 싶었'었'다.
채상우 시인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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