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주권이 강화된 나라들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집단소송제도를 두고 있다. 집단소송제도란 다수의 피해자 중 1인 또는 여러 명이 원고가 되어 법원의 허가를 받아 '대표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진행하고, 확정판결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지 아니한 나머지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미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집단소송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는 제조물책임ㆍ석면 및 환경피해ㆍ회계부정ㆍ고용차별 사건 등 광범한 영역에 걸쳐 집단소송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소송 전문변호사가 피해자의 이익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집단소송을 무기로 삼아 기업에게 화해를 사실상 강제하는 협박화해 등 각양각색의 악용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집단소송제도는 제조물피해 사건과 같이 소액ㆍ다수의 피해자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구제하면서도, 법률 위반행위를 미연에 억제하여 사회적 후생 증진도 도모할 수 있는 등 악용 가능성을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한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3건의 집단소송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대선주자들의 상당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함께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앞 다투어 공약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집단소송제도의 가치에 대한 방증이라 할 것이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지 12년이 지났음에도, 그동안 제기된 증권집단소송은 고작 9건에 불과했다. 2013년 부실을 숨긴 채 기업어음(CP) 등을 판매하여 4만여 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동양그룹 사태' 등 금융회사들의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본 투자고객들의 극심한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도 증권집단소송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도입 당시 재계는 매년 수십 건의 증권집단소송이 남발될 것으로 전망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무엇보다도 '사실상의 6심제'로 운영되는 소송허가결정 절차와 실효성 없는 '문서제출명령' 등이 주된 원인이다. 허가 결정에 대해 불복하게 되면 적어도 4년 정도가 걸리는데, 그 이후도 지난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어 애초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에다 집단소송의 대상이 '증권'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제조물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나 불공정거래 사건 등에 대해서도 집단소송이 가능하도록 대상을 확대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집단소송 규제책으로 인해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액ㆍ다수의 피해자가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소송남용에 대한 과도한 우려보다는, 집단소송제도를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기업의 체질이 강화되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켜 '소비자주권에 기반한 공정사회' 구축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맹수석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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