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촛불집회에서 몇 천 명이 먹을 초코파이와 핫팩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카페 멤버들을 취재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카페는 출산이나 육아, 교육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모인 젊은 엄마들이 회원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활동은 급기야 촛불집회 시민들과 따스함과 허기짐을 나누는 일로까지 발전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아이를 키우는 문제가 다양한 사회문제뿐 아니라 누가 나라를 이끄느냐는 정치권력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그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정치·종교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제일 나쁘다. 앞으로 3명 이상 모이면 무조건 정치 얘기만 할 거다. 엄마들한테 정치는 삶의 문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생활이 바뀐다는 것을 엄마들은 이미 안다”는 것이었다.
젊은 두 남녀가 뜨겁게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남자가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이걸 과연 애정이 식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연애에 대한 각자의 자세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만일 이 두 연인이 분단국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남자가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혹은 모든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병제가 아니었다면, 또는 60여년 동안 이어져 왔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 남북 간에 군사적 대결과 긴장이 현저히 낮아졌다면, 이들의 연애전선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지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몹시 불안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방과 후에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학교 돌봄교실에 보내야 하는지, 태권도학원이나 영어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머리가 아프다. 이런 고민을 같이 해결해 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엄마 개인의 능력문제가 아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입시지옥을 유발하는 교육정책이 아니라면, 방과 후 아이들의 삶을 지역이 세금으로 책임져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엄마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속을 태우지 않아도 될 일이다. 당연히 이런 일로 티격태격 부부싸움 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이런 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식의 사례들은 부지기수로 읊어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은 결국 본질적으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300여명의 아이들이 천천히 수장되는 것을 온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일이 벌써 3년째를 앞두고 있다. “내 아이를 잃기 전에 저는 정치에 무관심했어요. 그런데 이제 정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들, 제발 아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시켜주세요”라고 했던 세월호 부모님들의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촛불이 19차를 넘겼다. 탄핵심판이 끝나면 촛불의 진로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 뜨거웠던 촛불의 겨울을 끝내게 될지라도 여전히 정치는 우리 국민들 손에 달려 있고, 그것에 의해 우리 일상의 희로애락이 결과 지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강민정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