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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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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강민정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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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눈앞에 두고 있다. 3월 초순경에 탄핵이 인용되면 곧바로 조기대선이 치러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여러 대선주자들의 활동이 언론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히 정치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렇게 거대한 정치적 쟁점과 사건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적이 없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촛불집회에서 몇 천 명이 먹을 초코파이와 핫팩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카페 멤버들을 취재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카페는 출산이나 육아, 교육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모인 젊은 엄마들이 회원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활동은 급기야 촛불집회 시민들과 따스함과 허기짐을 나누는 일로까지 발전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아이를 키우는 문제가 다양한 사회문제뿐 아니라 누가 나라를 이끄느냐는 정치권력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했음이 틀림없다. 그 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정치·종교 얘기는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제일 나쁘다. 앞으로 3명 이상 모이면 무조건 정치 얘기만 할 거다. 엄마들한테 정치는 삶의 문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생활이 바뀐다는 것을 엄마들은 이미 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정치를 불온시하고 정치얘기는 순수한 무엇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통념이 퍼져 있었다. 이는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신의 결과인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는 소수 정치엘리트들이 하는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그저 투표만 잘 하면 된다는 식의 정치적 무관심과 정치소외를 내면화하게 해 왔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 주변의 일들 중에 정치와 무관한 것들이 정말 있을까? 철저하게 사적인 문제, 철저하게 감성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우리가 때때로 사적 영역의 문제라고 여기게 되는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보자.

젊은 두 남녀가 뜨겁게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남자가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이걸 과연 애정이 식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연애에 대한 각자의 자세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만일 이 두 연인이 분단국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남자가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혹은 모든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하는 의무병제가 아니었다면, 또는 60여년 동안 이어져 왔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 남북 간에 군사적 대결과 긴장이 현저히 낮아졌다면, 이들의 연애전선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지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부모는 몹시 불안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방과 후에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학교 돌봄교실에 보내야 하는지, 태권도학원이나 영어학원을 보내야 하는지 머리가 아프다. 이런 고민을 같이 해결해 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엄마 개인의 능력문제가 아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입시지옥을 유발하는 교육정책이 아니라면, 방과 후 아이들의 삶을 지역이 세금으로 책임져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엄마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속을 태우지 않아도 될 일이다. 당연히 이런 일로 티격태격 부부싸움 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이런 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소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던 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집안이 우울해지고 있다. 도무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그나마 계약직조차 만만하게 찾기 어려운 지경이다. 당사자인 아이는 말수가 적어지고 전에 없이 예민해지며,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는 마음이 무겁다. 아이가 짜증이라도 낼까 때로는 자식 눈치도 살펴야 한다. 이것이 남들처럼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한 우리 아이 잘못인가?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특허 강탈하기가 방조되지 않고 웬만한 중소기업들이 탄탄하게 돌아가는 경제구조라면 졸업을 앞둔 우리 아이의 시름도 집안 분위기도 훨씬 밝아지지 않을까?

이런 식의 사례들은 부지기수로 읊어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삶의 모든 것들은 결국 본질적으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300여명의 아이들이 천천히 수장되는 것을 온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일이 벌써 3년째를 앞두고 있다. “내 아이를 잃기 전에 저는 정치에 무관심했어요. 그런데 이제 정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들, 제발 아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시켜주세요”라고 했던 세월호 부모님들의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촛불이 19차를 넘겼다. 탄핵심판이 끝나면 촛불의 진로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그 뜨거웠던 촛불의 겨울을 끝내게 될지라도 여전히 정치는 우리 국민들 손에 달려 있고, 그것에 의해 우리 일상의 희로애락이 결과 지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강민정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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