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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삶터] 합리적이지 않을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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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애(한량과 낭인 사이 人)

김소애(한량과 낭인 사이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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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에서 인상적인 동영상을 보았다. 시작부터 개 한 마리가 하천 가운데 빠져 있고, 한 남자가 제방 벽을 타고 내려온다.개를 구하려는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 주인은 아닌 듯 했다. 비가 왔는지 하천은 흙빛이고 깊지는 않으나 물살이 세 보인다. 남자는 균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개의 덜미를 잡았다, 개의 경계심을 주의하면서.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7미터 높이는 돼 보이는 제방은 상당히 가파르다. 개를 제방 벽에 올려 돕지만 개는 기어오르지 못 한다. 남자는 여러 번 시도한다. 제방 위를 지나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내려와 합세한다. 어느새 대여섯의 사람들이 개를 구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쓰고 방법을 강구한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팔과 어깨로 연결된 인간 밧줄이 가파른 제방에 드리워지고 개는 마침내 구조된다. 건너편 제방 위에 있던 촬영자의 환호와 함께 영상은 끝이 난다.

영상 아래에는 이미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고맙다’, ‘감동적이다’, ‘(짧지 않은 영상을) 끝까지 응원하며 보았다’는 것들이고, 구조자들을 영웅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깟 개 한 마리 구하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하냐’ 류의 댓글은 찾을 수 없었다.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마션’에서는 화성에 홀로 떨어진 대원을 구하고자 대원 다섯이 화성으로 우주선을 돌린다. 그들은 화성을 출발해 520일간 지구로 귀환하던 중으로 연료도 충분치 않고 구조 가능성마저 희박한 상태였다.지구의 본부와 전세계는 그 결정을 존중하고 돕는다. 산악인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말라야’의 인물들은 등정 중 사망한 동료의 시신을 찾아 가족에게 인계하기 위해, 쉽지 않은 설득 과정을 거쳐 원정대를 꾸리고 위험과 고난을 불사한다.

앞서 개 한 마리를 구해낸 영상처럼 이런 영화들은 감동을 자아낸다.이 감동의 정체는무엇일까.인간의 이성적 논리와 합리적 사고로 판단하자면, 결코 현명하지 않은 결정과 행위들이다. 개 한 마리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장시간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능성 희박한 힘든 구조를 위해 다수가 목숨을 걸고, 시신(오래 전 생명이 종료된)을 찾고자 산 사람들이 죽음의 고지로 향하는 결심과 행위들.

여기서의 감동들은 또 하나의추상적 단어를 뇌수에 띄운다.‘참으로 숭고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도덕성이며…숭고의 감정은 도덕적 감정을 전제로 한다’라던 칸트의‘숭고’일지 모른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 시대가 다른 철학자의 ‘숭고’는 철학자들에게 양보하고,우리가 아는 그 ‘숭고’를 윤곽하고 싶다. 앞서 예가 된 상황들에서 공통점은 숭고의 중요한 특징이된다. 숭고한결심과 행위들은 ‘효율’을 처절히 배반한다는 것.
경제와 정치 전반에서 ‘파레토(Pareto)의 효율’이 적용되는 현대 사회는 효율이 중심 이데올로기다. 문명이 발달하며 효율에 방해되는 감성과 신비는 이성과 합리로 점차 자리바꿈 해왔다. 근대를 거쳐 현대 산업사회가 강화되며, 이성과 합리는 ‘효율’의 사생아가 되어 질풍의 세월과 척박한 세상에서 파시스트로 자라 버렸다.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아니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자주,‘효율’이 ‘이성과 합리’를 볼모로 ‘감성과 공감’을 내치는 것을 봐야 한다.

이 와중에,인간의 이성적 논리를 능가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AI)마저 급속히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화 ‘HER’ 속 ‘그녀’처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공지능이 ‘감성과 공감’을 흉내내고 시늉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태생이 효율인 AI에게 ‘비효율’의 극치인‘숭고’를 학습시킬 산업적 Needs(필요)는 좀처럼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숭고한 행위’가 AI 관점에선 명백한 오류가 될 테다.

AI에게 이성적 논리와 합리적 결정을 양보해야 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가? 인간이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지켜내야 할 능력은 무엇인가?
효율과 정밀을 무참히 짓밟는 오차와 오류 속에 무한함이 내재된 매혹과 감동이 인간에게는 있다.

김소애(한량과 낭인 사이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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