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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롯데의 결정과 정부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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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나관중의 삼국연의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위나라의 조조가 한껏 세를 펼칠 무렵 오나라의 손권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나는 천자의 명을 받아 남쪽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백만의 사나운 군사와 이들을 부릴 무서운 장수가 수천이다. 나와 뜻을 함께해 유비를 치자."

말인즉슨 이렇지만 내용은 그냥 항복하라는 엄포였다. 중국 대륙 중에서도 노른자였던 강남을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던 오나라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오나라의 넘버투이자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쯤 되는 장소가 앞장서 손권에게 고한다. "주군께선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조조에게 항복하면 백성들이 편하고, 강남의 여섯 고을을 보전할 것입니다."
수긍은 가지만 탐탁지 않았던 손권은 오나라 조정의 원로이자 학자였던 노숙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노숙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할 수 있어도 주공께서는 결코 항복하실 수 없습니다. 오나라의 벼슬아치들은 조조에게 항복하면 벼슬이 오를 것이고 잃는 것이 없겠지만, 주공은 기껏해야 작위 하나를 받아 수레 한대에 말 한필, 시종 서넛을 받는 게 전부일 것입니다."

우리는 항복해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겠지만, 왕인 너는 다 뺏기고 목숨이나 건지면 다행이라는 얘기였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전쟁을 불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왕정시대에 타국의 군사적 패권에 눌려 항복하는데 앞장선 벼슬아치들은 자기 밥그릇을 지켰지만, 패망한 군주는 숙청뿐이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국제사회에서는 같은 힘의 논리가 반복된다. 전쟁보다는 경제압박, 왕좌를 뺏기는 군주 대신 주권을 침해당하는 국민들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중국의 압박이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병법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상대하고 있다. 사드배치와 중국의 경제적 압박을 놓고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자. 경제적 보복과 피해는 기업의 몫이니 철회하자는 의견과 중국의 압박에 우리의 군사주권을 침해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36계'중 하나인 반간계로 내부를 이간시키고, 손자병법의 '격안관화' 술책대로 적의 힘이 빠질 때 까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며 상황을 부채질 하는 것이다.

안보와 경제는 선후를 고민할 일이 아니다. 나라가 없는데 경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국 내 영토에 국제협약에 어긋나지 않는 무기배치에 대해 타국의 간섭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지금은 조선이 명나라를 상대하던 시절이 아니다. 다른 예를 가정해 보자. 우리나라가 만일 항공모함을 실전배치 하거나, 미사일 사거리를 4000km 이상 늘리는 군비확충에 나선다면 중국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 자명하다. 그때도 이를 중국이 문제 삼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군사주권을 앞세워 메여있는 기업들이다. 당장 롯데그룹이 그렇다. 사드 배치 부지를 내어주면 중국에서 나갈 각오를 하라는 엄포까지 듣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인데다 중국내 수조원의 사업을 하고 있는 롯데로서는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롯데는 사업보다는 국가를 선택했다. 롯데가 중국의 부당한 요구에 자국 안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심각한 정체성 결여와 자존감의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압박에 울며겨자먹기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국기업' 롯데로서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현실정치학의 대가로 불리는 독일의 한스 J 모겐소는 '핵을 갖지 못한 나라가 핵보유국과 전쟁을 하면 적국에 대들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말을 남겼다. 현명한 판단을 내린 롯데가 힘든 시기를 잘 마무리짓기를 바랄 뿐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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