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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삶은 어디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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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은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작가>

김희은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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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러시아 화가, 1846-1898)는 이 소설에 깊은 감흥을 받는다. 그리고 <삶은 어디에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화폭에 담고자 한다.

러시아 차르에 반대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정치범들의 열차 안에도 삶이, 생명이 있음을, 형극의 수형길 앞에서도 잠깐의 햇볕을 즐기며 새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많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 아님을, 빵 조각을 나눠주는 고사리 손을 통해 일깨워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빛날 수 있고 가난할지라도 풍요로운 영혼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엄마의 품에 안겨 미소 짓는 아기의 천진한 얼굴에서 우리는 순수의 절대 정의를 읽을 수 있으며, 혹한의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찰나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혁명가들의 풍요로운 영혼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찬 역사를 점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삶은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말한다. 그리고 삶에 겸손하고 진지해지며 작은 사랑일지라도 실천할 것을 그림이 가르친다.
삶이 절망적일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 그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들 때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실을 이겨낸다.

난 그림을 본다. 그림 속에 내 슬픔을 올려 놓고 어두운 현실을 어루만지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마음이 정화되고 그렇게 그림으로 치유받는다.

니콜라이 야로센코(1846-1898) <삶은 어디에나>1888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시베리아로 유형 떠나는 죄수 수송열차가 간이역에서 잠깐 정차하는 동안 자신들에게도 부족한 빵 조각을 비둘기에게 나줘주며 기차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

니콜라이 야로센코(1846-1898) <삶은 어디에나>1888년 ⓒ트레챠코프 미술관 시베리아로 유형 떠나는 죄수 수송열차가 간이역에서 잠깐 정차하는 동안 자신들에게도 부족한 빵 조각을 비둘기에게 나줘주며 기차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즐기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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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모스크바에 첫발을 내디딘 후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서른 살의 아기였던 나는 깊은 절망을 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워하던 내게 야로센코의 이 그림이 말을 걸어오더라. 삶에 허덕이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 어떤 척박한 상황에도 삶은 존재하는 것이니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라 그림이 가르쳐 주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화려함에 있지 않고 진솔한 모습으로 현실을 대면하며 작은 실천을 이뤄갈 때 빛을 발한다 일러준다. 지금의 절망이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거름이란 것을 전율로 느끼게 해 준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인생의 새로운 출발선상에서 삶의 기본자세를 가르쳐 준 소중한 그림이다.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감동이 발작처럼 갑자기 그에게 복받쳐 올랐다. 한꺼번에 그의 마음은 녹아 내렸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서 있던 모습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센나야 광장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는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야로센코의<삶은 어디에나>를 처음 만난 그날, 나도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되어 그렇게 러시아 그림과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랑은 풍요로운 아름다움이라 표현될 수 있으며, 영원히 이별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20년 가까이 내 삶의 터전이 되어 준 러시아 그림 사랑이다.

김희은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작가>

* 니콜라이 야로센코 (1846~1898)
러시아 화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림 공부. 군인이며 화가. 이동파의 실질적 리더.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초상화, 혁명에 우호적인 학생, 러시아 노동자를 주로 그림. 대표작 <수인><신구의 싸움><학생><여학생><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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