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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화가의 화려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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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인호 작가 두 번째 개인전

사진 왼쪽부터 안윤모 작가, 어머니 이길주 씨, 계인호 작가, 아버지 계광열 씨 [사진=갤러리일호 제공]

사진 왼쪽부터 안윤모 작가, 어머니 이길주 씨, 계인호 작가, 아버지 계광열 씨 [사진=갤러리일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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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오보에, 하프, 첼로 3중주의 아름다운 선율이 갤러리를 가득 채웠다. 계인호 작가(24)의 두 번째 개인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의 공연은 작지만 따뜻했다. 모두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때부터 이어온 소중한 인연들이다.

계인호 작가는 자폐성 장애 1급이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콩알이나 쌀알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그림들이 수백 점에 이른다.
어머니 이길주(63)씨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모든 면에서 느리고 예민했다. 두 돌이 되고나서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고, 자폐 진단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필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어떤 형상이 있었다. 정말 반가웠고, 소중했다. 유치원(6세)때부터 무언가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시간만 나면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고, 나날이 정교해졌다. 다른 아이들처럼 여러 곳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했다. 기술도, 선도 더욱 단단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반인들과 달리 선택에도 제한이 있어 특별한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조기교육이나 미술프로그램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미술 소질을 발견했다. 어머니 이길주 씨는 부모된 입장에서 이 기회를 확장시키자는 생각뿐이었다. 되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안윤모 작가(55)를 만났다. 어머니 이 씨는 "안 작가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아이들이 화가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꿈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안 작가는 8년 전 우연히 계 작가의 작품을 보고, 놀라울 정도의 세밀한 표현력과 아름다운 색채에 반했다. 이후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교육을 했다. 안 작가는 그의 만화 같은 작은 이미지들이 전체적인 구성과 조화를 이룬 회화작품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계인호, 꽃길, 72x91cm, acrylic, 2016(사진 왼쪽)/ 계인호, 풍경, 91x115cm, acrylic, 2016(사진 오른쪽)

계인호, 꽃길, 72x91cm, acrylic, 2016(사진 왼쪽)/ 계인호, 풍경, 91x115cm, acrylic, 2016(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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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작가는 "충분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금껏 가르쳐서 나아졌다기보다 스스로 변화한 점이 더 많다. 무엇보다 섬세하고, 색을 쓰는 감각이 뛰어나다. 자연의 색에 가깝게 원색을 즐겨 쓰는데, 화려하면서도 조화롭다. 여기에 무한한 상상력이 더해진다. 작가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안 작가는 2011년 부산을 시작으로 지금껏 계인호 작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자폐성 장애 친구들과 종이컵 프로젝트, 맨투맨 프로젝트를 함께 해왔다.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각각 다른 주제로 전시를 했다. 월드투어의 필요성도 느꼈다. 더 넓은 곳에서 함께 교류하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안 작가가 주로 기획하고 섭외하고 운송까지 담당했다. 현지 단체나 갤러리와 이메일을 계속 주고받으며, 발품도 많이 팔았다.

2013~2014년 사이에는 인도네시아(발리, 애니카 린덴센터), 미국 뉴욕(굿맨 갤러리, 퀸즈 뮤지움), 벨기에 브뤼셀(보자르 아트센터, UN본부)을 돌며 '나비가 되다'전을 열었다. 안 작가는 "자폐는 온 인류의 문제다. 자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자폐가 무엇인지를 알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다"고 했다.

자신의 작업도 있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작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할 줄은 몰랐다.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가족들의 흐뭇한 모습을 보니 연을 끊지 못하겠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임감을 갖게 되고 같이 성장했다"고 했다.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일호 제공]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일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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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부나 재단에서 정기적으로 지원을 받은 적은 없다. 그래도 지금껏 초대전만 했다. 모두가 프로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 작가는 "(초대전만 치른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대신 실력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장애를 이유로 오히려 득을 보려하지 말고 일반인과 똑같이 당당하게 그림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관객이 편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그만큼 독특한 시각과 함께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 세계는 결코 작지 않다. 계인호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자 능력이기도 하다. 안 작가는 "자폐아들은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소통에 문제를 겪을 뿐이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서라면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작가로서 그 세계를 이해해주고 상상해보면 된다"고 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는 갤러리 일호에서 문을 연 전시는 26일까지 계속된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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