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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퇴계와 두향, 그리고 '불매향의 비밀'

최종수정 2017.01.12 03:00 기사입력 2017.01.11 11:42

빈섬스토리, 시와 인생이 흐르는 풍류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이날 관아로 돌아가면서 두향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낸다.

"기녀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한시 중에 오매월류(梧梅月柳)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칠언(七言)의 절구인데, 누가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사옵고 그냥 떠도는 것이옵니다. 혹시 나으리는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그래. 나도 한양에 있을 때 어느 기녀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노라."

"아아, 그렇사옵니까? 제가 한번 불러보면 어떨지요?"
"좋다마다."

두향은 음색을 가다듬어 노래를 부른다.

"梧千年老恒藏曲(오천년로항장곡)이요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이요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라"


퇴계가 그 뜻을 가만히 풀며 음미한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그 속에 노래를 지니고 있고
매화는 평생 추위와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빛은 천 번 이지러져도 원래 모양은 남아있고
버드나무 줄기는 백 번 찢어내도 또 새로운 가지가 난다"

두향이 물었다. "오동나무가 노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오동나무는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악기를 만드는 목재가 아니더냐. 젊은 오동나무로도 악기를 만들 수 있지만 늙은 오동나무로도 여전히 만들 수 있으니 천년 묵은 오동나무도 그 속에 울림성 좋은 노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두향이 다시 물었다. "아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매화가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인지요?"

"그 꽃이 평생을 춥게 지낸다는 표현을 보렴. 매정(梅精ㆍ매화꽃의 정기)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시인이 읊은 것이지. 매정은 동짓날에 일점(一点)의 양기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더냐. 가장 추운 시절을 견디면서 이 꽃은 속으로 속으로 그 빛과 온기를 돋워 마침내 봄을 피워내지 않더냐.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화가 피면서 봄을 밀어올리는 것을 우린 알고 있지. 어떤 꽃들은 생명이 위태로우면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자신은 죽어버리는 방법을 택하지 않더냐. 하지만 매화는 절대로 그런 법이 없어. 추위 자체가 삶의 환경 전부라 할 수 있어. 춥다고 서둘러 향기를 내어 나비나 벌을 유혹할 생각이 없지. 끝까지 제 봄을 만들어 피워올리니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였을 것이니라."

"나으리의 설명을 들으니 눈앞이 환해지는 듯합니다. 그럼, 달빛이 이지러지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달이 이지러져도 본질은 남아있다는 것은, 현재의 슬픔에 낙망하지 말라는 뜻을 품고 있지. 크고 아름답던 달이 반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어 밤하늘을 캄캄하게 할 때, 우린 그걸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절망하여 일을 그르치기가 쉽단다. 그믐달은 곧 초승달이 되지 않더냐. 달의 크고 작음은 순환하는 것이기에 기다리면 다시 커지는 게 당연한 법. 하지만 이 시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달이 이지러졌을 때 그 안에 보름달이 있음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지. 그래서 시가 멋이 있구나. 보름달이 달의 본질이니 눈에 닥친 현상만으로 판단하여 본질을 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란 이야기일세."

"정말 그렇군요. 마지막 구절에 버드나무 줄기가 백 번의 이별을 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지요?"

"그건… 버드나무에 얽힌 옛사람들의 사연을 떠올리면 맛이 있을걸세. 옛날 지방의 항구엔 관리로 부임했다가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그런 와중에 슬프고 아픈 이별도 많이 생겼지. 특히나 그런 인사(人事)는 봄날에 나는 법이라. 버드나무는 물가에 잘 자라는 나무이지. 떠나는 남자에게 보내는 여인은 버들가지를 꺾어주며 그걸 심어 날 보듯 바라보라고 말하곤 했지. 고려시인 정지상(鄭知常)이 읊은 '송인(送人)'이란 시 속의 여인은 필시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쥐고 있을 거야. 항구의 이별을 담은 시니까 말이야. 또 절양류(折楊柳)는 강변의 버들을 꺾어 떠나는 손님에게 주며 눈물로 읊는 이별의 시를 말하지 않던가. 한자 柳(버들 류)는 留(머무를 류)와 음이 같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라도 더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이라네. 백 명의 남녀가 봄마다 항구마다 연인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쥐여주며 헤어지는데도 다음 해 봄이면 다시 버들이 백 개의 가지를 드리운다. 이별보다 강한 것은 새로운 사랑이라는 것이지."

"아아, 참으로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세 가지는 식물(오동나무, 매화, 버드나무)인데, 한 가지는 사뭇 다른 달(月)인 것이 눈에 띕니다. 어찌해서 네 가지 식물을 다루지 않았을까요?"

"잘 보았구나. 그 소재들은 그냥 아무렇게나 고른 것이 아닌 듯하구나. 이것들은 모두 기녀들이 자신을 가탁(假託)했던 것들이 아니더냐. 오동나무는 거문고였기에 그녀들의 분신이었고, 매화는 그녀들의 향기였고 지조였지. 버드나무는 그녀들의 가슴 아픈 이별이었고, 달은 그녀들의 사랑의 밤과 한숨 가득한 이별의 밤들을 비추는 것이었지. 화류의 삶을 사는 기생들은 이 네 가지 벗을 소재로 삼아, 그 슬픔을 이겨내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늙는 것, 추운 것, 이지러지는 것, 이별하는 것."

"과연! 그러하군요. 마치 저의 일상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시간들이 들어있군요. 오동나무는 1000년의 시간이고… 매화의 일생은 꽃 하나만 보자면 겨울 석달이고… 달이 이지러지는 것은 1년에 12번이니 천 번을 이지러지려면 어림잡아 100년쯤 되겠네요. 버들줄기가 100번 찢어지는 것은 봄날 한철이지만 다음에 다시 100번 찢어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1년이네요.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1000년-3개월-100년-1년이니… 음률로 말하자면 강-약-중-약으로 높낮이와 세기의 흐름을 타고 있군요. 또 천년은 예술의 시간이고, 석달은 향기의 시간이며, 백년은 인간의 수명이며, 1년은 사랑의 시간이군요. 예술에 의지하면 천년을 살고 미색에 의지하면 석달이고 사랑에 의지하면 고작 일년을 갈 뿐이니… 인간 백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두향의 주석(註釋)은 늘 놀랍도다. 시 속에 살아 움직이는 음악을 발견해내니 보통 재능이 아니로다. 인간 백년의 무상이야, 어찌 기녀들만의 슬픔이겠는가. 다만 그 삶의 굽이와 고비마다 뜻을 지키고 향기를 팔지 않으며 사는 것이, 저 시가 말하는 요체가 아니겠느냐."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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