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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간 이인화의 논란소설 '인간의 길', 기자가 찾아 읽어보니

최종수정 2017.01.06 08:18 기사입력 2017.01.05 18:11

20년 전 나온 장편 속 '박정희 웨이'의 비밀… 과연, 이 정부 비선에 '부역'하는 서장이었나

박정희와 이인화(그림=오성수 화백)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의 구속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필명을 들어 인기 작가 이인화의 몰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0대에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 명문대학 교수로 초빙된 그가,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으니 충분히 몰락이라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이력에서 빠지지 않는 "박정희를 미화한 소설 '인간의 길'을 썼다"는 설명에는 그의 몰락이 그다지 느닷없는 것은 아니라는 시선이 일정부분 배어 있다. 박정희를 위대한 인물로 떠받들었으니 그 연장선 위에 있는 박근혜 정권과 명운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 아니겠냐는 것이다.

어쩌면 이인화는 그가 쓴 '인간의 길'에서 옳다고 제시했던 삶의 길을 그대로 따라 살아온 것뿐인지도 모른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학점 수발을 든 것도, 좀 수치스럽겠지만 그가 걷는 인간의 길의 한 과정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믿었던 인간의 길이 어떤 길이기에 한때 천재라는 말을 듣던 인기 작가를 몰락으로 이끌었을까. 궁금증에 3권짜리 소설 '인간의 길'을 펼쳤다.

◆20년 전 출판된 소설 '인간의 길'= '인간의 길'은 20년 전 소설이다. 1997년 출판돼 당시에도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문민정부 집권 기간 경제는 파탄이 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자 강력한 통치자,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였다. 이 소설에 쏟아지는 공격에 작가가 '박정희가 경제를 살린 것은 인정해야 하며 발전이 희생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아는 것이 영웅'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시대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정치인, 대통령 박정희가 아니다. 3권짜리 소설은 1951년까지를 그리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박정희를 모델로 한 주인공 허정훈은 한국전쟁 중 전장의 참화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간의 길을 비로소 정립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박정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박정희가 됐는지를 설명하는 셈이다. 박정희는 왜 국가를 위해서 민중은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는가, 왜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납될 수 있다고 믿게 됐는가를 인간의 길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허정훈의 인간의 길 = 이인화는 박정희의 삶을 그리며 "이 모반자의 삶은 시대의 한계를 거부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본보기였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시대에 태어나 가장 고통스러웠던 세월을 이겨 내고 가난과 절망에 빠진 한 민족을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번영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번영'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인공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의지라고 표현했다.
그 의지의 발현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장에서 북한군에 포위된 상태로 허정훈은 "이 극한 상황에서 무한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 외에 무엇이 정당하단 말인가. 살아남겠다는 의지는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인간의 길이 부재하는 삶을 비판하기 위해 인간은 먼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음으로써 저 하늘에 대한 모반을 수행한다. 인정승천(人定勝天). 인간의 의지가 하늘을 이기리라. 이 무참한 하늘을 이겨 내기 위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다짐한다.

이인화는 이 소설이 출판된 뒤 논란이 일자 기고를 통해 "박정희의 쿠데타가 던지는 문제는 '대의를 위한 범죄는 정당한가'이다. 범죄처럼 보이는 행위들이 당대의 구체적인 총체성 속에서는 고도의 도덕성일 수 있다. 동기와 결과가 대의에 걸맞다면 범죄는 정당할 수 있다"는 요지로 설명을 더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그가 정유라의 학점을 챙겨준 것도 일견 범죄처럼 보이지만 스스로는 어쩌면 큰 대의에 걸맞은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 = 절판된 이인화의 '인간의 길'을 구해 보기 위해 도서관에서 검색을 하면 제목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책 한 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 이 책은 이인화가 믿는 것과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길을 소개하고 있다.

스위스 태생의 장 지글러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세계의 기아 문제에 경종을 울린 사회학자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며 수많은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현장을 지켜봤을 그가 얘기하는 인간의 길은 허정훈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이 책에 임마누엘 칸트의 말을 옮겨 적으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남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 안의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칸트나 지글러에 따르면 허정훈이 믿는 인간의 길은 이미 인간성이 파괴돼, 인간의 것이 아닌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글러는 그러면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사하는 모든 권력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길을 가는 것이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이 책에서 강조했다.

이인화는 '인간의 길' 3권에 이어 '혁명의 길', '나의 조국'을 출간해 박정희의 일대기를 10권의 소설에 담을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첫 권을 여는 작가의 말에 "훗날 신이 이승에서 뭐 하던 사람이냐고 물으시면 나는 아마 인간의 길 삼부작을 썼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혁명의 길'과 '나의 조국'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 영어의 몸이 된 이인화는 여전히 그가 쓴 인간의 길이 옳다고 믿을까. 훗날 뭐하던 사람이냐고 묻는 신에게는 뭐라고 답할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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