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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혼밥' 정치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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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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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는 현대인이 점차 늘고 있다. 식음료 문화가 나름대로 격식을 갖춘 식사에서 단순한 소비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박근혜 대통령도 예외는 아닌가.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식당에서 거의 혼자 식사하며 TV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주 벨뷰 소재 시장조사업체 하트먼그룹이 2014년 내놓은 '미국인들의 식음 양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인 중 46%가 혼자 식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대 성인 남녀 1593명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52.5%가 '나홀로족(族)'이라고 자처했다. 응답자 중 75.9%(복수 응답)는 나홀로족이 된 이유로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이어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돼서"(66.4%),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고"(36.7%), "남에게 맞추는 게 힘들어서"(35.5%), "남들과 비교되는 게 싫어서"(10.6%) 순이다. 혼자 하는 활동 1위로는 95.3%가 '혼자 밥먹기(혼밥)'를 꼽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수도권 대학생·직장인 1300여명을 조사해본 결과 혼자 밥 먹을 때 대화 상대가 없어 "TV를 본다"(58.9%)거나 "스마트폰을 한다"(26.1%)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하트먼그룹은 미국의 혼밥족이 느는 이유를 5가지로 꼽았다. 무엇보다, 2차대전 이후 가정에 큰 변화가 생겼다. 주부의 노동력 편입이 활발해진 것이다. 편부모 가정의 증가와 기술발달도 전통 식사문화를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
둘째,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게 살다보니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 먹는 일이 드물어졌다. 셋째,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깝다. 미국 직장인들 가운데 자리에서 바쁘게 일하며 혼자 끼니를 때우는 이가 많아졌다.

넷째, 스낵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아침·점심·저녁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하루 중 언제든 배가 고프면 허기를 달래는 식이다. 게다가 긴 노동·출퇴근 시간 탓에 간단한 스낵이 환영 받는다.

다섯째, 쇼핑양태에 변화가 생겼다. 오늘날 쇼핑 통로가 다양해져 한 번 장 본 뒤 냉장고에 가득 쌓아두고 조리해 먹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가까운 식료품점에서 신선한 제품을 사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인들이 혼자 밥 먹는 이유는 다양하다. 43%(복수 응답)는 "TV 시청 혹은 독서가 가능해" 혼자 먹는다고 답했다. "밥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이는 18%다.

"하루 대부분 혼자 지내기 때문"이 37%, "혼자 먹어야 해야 할 일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은 21%, "단지 혼자 살기 때문"이 19%, "혼자 먹으면서 일해야 생산성이 좀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답은 17%를 기록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답한 이도 18%에 이른다. 혼밥이 일상의 파편화 등 사회·문화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트먼그룹에 따르면 혼밥은 이제 물리적·사회적 고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현대생활의 일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혼밥은 '자발적 고립'에서 비롯된 듯하다.

밥상은 여전히 대화하면서 서로 정과 생각을 나누고 미래를 함께 그려 가는 상호관계의 작은 공간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더 말해 뭐하겠는가. 그러잖아도 구중심처(九重深處) 같은 청와대에서 혼자 밥 먹는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애초 소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게 혼밥 아닌가.

박 대통령이 혼밥에 TV 시청이라는 '혼놀(혼자 놀기)' 대신 한 밥상에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밥 먹으며 깊이 있게 대화했다면 '불통'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진수 국제부 선임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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