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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포럼]우주의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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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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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고 믿었다. 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마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주가 수축해야만 한다는 자신의 계산 결과를 보고 그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벌써 100년도 더 전인 1915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에 의해 공간이 어떻게 휘어지는지 알려주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우주 전체에 적용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우주가 반드시 수축해야만 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들이 서로를 중력으로 당기므로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아인슈타인은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물질들의 중력이 서로 끌어당겨 우주가 수축하므로 그것을 막으려면 우주가 수축하지 않도록 밀어내는 힘이 필요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에 밀어내는 힘에 해당하는 새로운 항을 하나 추가하고 그것을 우주상수라고 불렀다. 그 밀어내는 힘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신비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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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푼 러시아의 물리학자 프리드먼과 벨기에의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의 정지한 우주는 너무나 불안정하여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많은 외부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적색편이 관측 결과를 알고 있었던 르메트르는 이것이 우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은 처음에는 이들의 계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계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것은 계산일 뿐 실제 우주는 계산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29년 에드윈 허블이 외부 은하 관측을 통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아인슈타인은 결국 정지한 우주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방정식에서 우주상수를 철회했다.
그런데 약 70년이 지난 1998년, 빅뱅으로 팽창을 시작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우주의 역사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조사하던 과학자들이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가 빅뱅으로 팽창을 시작하긴 했지만 우주 내부의 물질들이 중력으로 당기기 때문에 우주의 팽창 속도는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관측 결과는 그와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물질들이 중력으로 당기는 힘보다 더 강한 밀어내는 힘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힘은 70년 전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우주상수와 같은 힘이다. 우주론의 방정식에는 아인슈타인이 철회했던 우주상수가 부활했고, 과학자들은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미지의 힘에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암흑에너지는 빈 공간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으며, 우주가 팽창할수록 그 위력이 점점 더 커지는 신비한 힘이다. 이름은 멋지게 붙여 놓았지만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발견이라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암흑에너지는 현재 우주 전체 에너지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며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진정한 '우주의 기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며 우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힘은 우주 전체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지구의 중력이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지 그 기운이 뭔가를 이루어 주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정말 궁금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어떤 우주의 기운이 도와 주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우주의 기운은 우리에게 맡겨 두시고 국민의 기운에나 좀 더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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