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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눈]대통령 앞에서 "하야"란 말 꺼냈던, 설민석 아버지

최종수정 2016.12.21 14:25 기사입력 2016.11.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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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고 돈다…4.19때 대통령을 내려오게 했던 부친을 둔 '전설의 강사'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한국 근현대사 강좌에서 정평이 난 '전설의 인강선생' 설민석씨(1970년생). 강의 때는 당연히,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역사의 냉정한 평가란 다소 진보적 색채를 띠기 쉬운 게 사실이다. 수험생들 머리에 쏙쏙 들어앉는 그의 스토리텔링 속에는 당대 기득권이 지녔던 부도덕이나 권력남용에 대해 단호한 말투가 양념 노릇을 한다.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었을 때 그는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하고 경제 파탄 나고 친인척 비리 발생하고 이런 거 분명 잘한 건 아닙니다. 근데 이걸 갖고 탄핵을 하는 건 좀 지나치다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전직 대통령들은 죄다 사형감입니다."

당시 노대통령의 탄핵이 지나치다고 평가하는 대목이다. 노 전대통령이 지니는 한국 정치지형 속에서의 위치를 감안하면, 진보적 진영의 곤경에 대해 엄호를 해주는 풍경이다. 거기에 덧붙여 박정희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그의 인식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대개 이런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신중하다. 반드시 그것 때문만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정치인으로 살아온 부친에게 부담이 되는 언행을 삼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한다.

설민석씨의 부친 설송웅(1942년생)은 박정희정권 시절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노태우정권 때인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용산구에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쓴 잔을 마셨다. 김대중정부 들어 새천년민주당 공천으로 민선 용선구청장을 지냈고 2000년 민주당 후보로 총선 고지를 뚫었다. 이후 대선 때 '반노무현' 계열에 속했으나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 때 동참을 했다고 한다. 전체적인 이력을 보면 비교적 전형적인 야당 정치인이었으나,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면서 여당의 줄에 섰다. 오래전 청와대 인연이 있어서였을까. 아마도 지금으로선 이 선택이 가장 뼈 아플 수도 있을듯 하다.
설송웅씨가 뉴스에 떠오른 까닭은, 최근 그의 인상적인 이력이 방송을 타면서부터이다. 1997년 4월19일자 동아일보에는 작은 박스기사 하나가 실렸다. '4.19 혁명 때 시민대표(였던) 설송웅씨'에 관한 기사다. 용산구청장 시절이었다. 글을 조금 정리해서 다시 읽어보자.

[뉴스의눈]대통령 앞에서 "하야"란 말 꺼냈던, 설민석 아버지



1960년 4월26일. 설송웅은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 앞에 서 있었다. 4.19혁명 이후 18세의 서울중동고 학생회장으로서 시민대표 여섯명 중 한명으로 뽑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간 것이다.

설씨는 청계천 수표교회에서 모임을 가진 뒤 시위를 벌이다가 당시 계엄군들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그들은 설씨를 창덕궁 계엄사 본부사령부로 데리고 갔다. 송요찬 당시 계엄사령관이 말했다.

"내가 자네를 이박사께 안내할테니 국민들의 참뜻을 전해달라."

그 뒤에 매카나기 당시 미국대사와 허정 외무장관을 만난 뒤 경무대로 들어갔다.

그는 대통령 앞에 서서 말했다.

"하야..."

이승만대통령은 먼산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물러나야 하는가."

"국민의 뜻입니다."

10분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군중에게 대통령 면담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하야하라는 민심을 전했습니다."

18세 고교생이 아무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하야'라는 말을 대통령 앞에서 직접 꺼낸 것도 놀랍지만,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은 역사가 이토록 기시감으로 되풀이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4.19에서 그토록 단호하게 민심을 전달했던 그가, 최근 몸 담았던 정치적 둥지를 돌아보면 착잡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지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그림'들에 대한 민심의 분노와 저항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100만명이 몰린 광화문 촛불들의 뜻과 그 어린 시절의 4.19가 오버랩되었을까. 정치적인 입장을 선택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 그것을 탓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역사는 돌고 돈다는 엄혹한 진리 앞에 선 감회가 작지 않을 것 같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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