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주부 어려움 제도로 개선 노력
적당히 하고 말면 피해보는 건 국민
공직자 되려면 소명의식부터 가져야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고용노동부는 여성이 일하기 힘든 부처라는 인식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가 노사관계조정이라는 거칠고 험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관련 업무가 증가하면서 업무 부담이 배로 늘었다.
◆ "배우자 출산휴가제 도입 가장 큰 보람" = 김 국장은 딸과 아들을 둔 엄마다. 때문에 '일하는 주부'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 때문에 김 국장은 스스로 가정과 일의 양립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가정 일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그래서 자신이 몸소 체험한 애로점을 제도로 개선시키려 노력했다.
2007년 여성고용과장을 맡았을 때 일과 가정의 양립에 초점을 맞춰 배우자 출산휴가제와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를 공무원으로서의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로 꼽았다.
현재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3일 동안 출산휴가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김 국장 덕이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잘 돼야 업무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남녀고용평등 및 일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육아휴직 대신 근무시간을 줄여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육아근로시간 단축제도도 신설했다.
◆ "남자도 꺼린다고? 해내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 = 2008년에는 노사관계 법제과장을 맡았다. 고용노동부 최초의 여자 법제과장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노사관계법제과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를 상대하는 곳이기 때문에 남성들조차 맡기 꺼려하는 부서였다. 관련 법률지식은 물론 각종 노사관계 네트워크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곳에 김 국장은 본인 스스로 기꺼이 자원했다.
김 국장은 "노동조합 등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터프하다는 인식이 강해서 지원하는 여성 공무원이 없었다"면서 "해보고 싶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직접 손을 들고 자원했다"고 했다.
노조업무에 대해서는 처음인지라 우려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노사 양쪽에서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국장은 당시 실무책임자로서 외국의 입법례나 기본 자료를 열심히 챙기는 등 섬세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호평을 받았다. 결국 김 국장은 당시 노동계 최대 현안이었던 전임자 복수노조 제도 개선과 근로시간면제한도제(타임오프제) 도입 등 13년간 유예돼온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에 실무책임자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관련 토론회에서 국제노동단체 간부들이 과거의 틀린 자료를 제시하자 이를 조목조목 반박한 뒤 "한국의 노동법을 조롱하지 말라"고 지적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다.
김 국장은 "기본적으로 열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과거에 안해봤더라도 그 일을 잘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 맏언니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 어느덧 최고참이 된 김 국장은 리더십이 뛰어나 부처와 상관없이 여성 후배들에게는 '왕언니'로 통한다. 직장생활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상담하는 소통의 창구다.
주위에서는 김 국장에 대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식사를 하면서 가정사 얘기를 많이 나눈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업무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직장생활 오래 하다보니 리더십을 생각하게 됐다"면서 "나무에도 결이 있듯이 사람마다 결이 있는데 어떤 한 가지의 리더십이 정답은 아니고 사람마다 맞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과장 시절 김 국장에게는 존경하는 국장이 두 분 있었다고 했다. 한 분은 정말 강직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또 다른 한 분은 부드러운 포용력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김 국장은 "두 분 다 배울 점이 많았지만 자신에게는 부드러운 쪽이 더 맞았다"면서 "억지로 자기를 바꾸려고 하지말고 후배직원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 결에 맞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에 대한 열정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 "일과 가정 양립,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 = 김 국장은 일과 가정을 잘 양립시키려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할 의지만 있으면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을 고용하는 등 어떻게 해서라도 가사 일을 충분히 해결할 수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그에게도 가족들, 특히 둘째 아이에 대한 미안함은 존재했다.
김 국장은 "둘째 임신과 동시에 서기관 승진이 겹치고 유학 문제까지 걸려 많이 바쁘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여서 태교는 꿈도 못 꿨다"면서 "그러다보니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해 3살 정도까지 참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잘 커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 "공직에 소명의식 가져라" = 김 국장은 공직이라는 것이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무엇보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김 국장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히 하고 말 수 있는데 그러면 결국 피해보는 것은 국민들"이라며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많은 일은 끝을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당히 하면 욕을 안 먹을 수 있는 있겠지만 제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국장은 "눈치 잘 보고 이런 사람이 출세한다고 하지만 오래 공직생활을 해보니 그건 아니더라"면서 "그런 식으로 하면 결국 티가 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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